여고동창 하진(김소진), 성은(공상아), 영(오유진)이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세 여자는 속사포 같은 대화를 이어나간다. 대화의 주제는 학창 시절의 회고라든가 요즘의 생활, 연애 따위의 평범한 것들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동안 세 여자의 눈빛은 심각해지고 각자 속내를 드러내며 대화는 파장을 맞는다. 극단 차이무의 동명 연극을 영화화했다. 민복기, 박진순 감독은 과감한 각색 대신 최대한 원작에 손대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내용뿐 아니라 연극적 특성까지 그대로 끌어안는다. 그래서 연극을 보지 않은 관객에겐 <씨, 베토벤>이 틈이 많은 영화로 보일 수 있다. 다만 그 틈이 누군가에겐 여유로운 연출로, 다른 누군가에겐 헐거운 구성으로 여겨질 듯하다.
일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되는 세 배우의 대화가 일품이다. 관객은 여자친구들의 수다 자리에 함께 끼어앉은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받는다. 대화에 활기를 더하는 건 배우와 스탭의 실수다. 충분히 재촬영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감독들은 실수를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영화에 넣었다. 보통은 편집되기 마련인 이 실수들이 영화 안에 남아 활력의 요소로 작동한다. 중반부까지의 청량감은 후반부로 들어서며 서늘한 분위기로 반전된다. 커다란 감정적 진폭이 드러나진 않지만 한순간에 낯빛을 바꿔버리는 주인공들의 얼굴만으로도 극의 분위기는 충분히 불편해진다. 대화의 장이 되는 반지하 카페는 뜨거운 땀이 식은 뒤의 싸늘해진 공기까지 그대로 느끼게 한다.
한편 세 여자의 수다 사이엔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러 명의 남성 캐릭터가 있다. 연극에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이었을 그들은 스크린 안으로 들어와 힘을 잃는다. 편집이 존재하는 영화엔 그들의 역할이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등퇴장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며 영화의 리듬까지도 점차 단조로워진다. 덧붙이자면 영화에 나오는 베토벤 아저씨는 모 여대에 상주하는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