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상처받은 두 사람의 사랑 <스케치>
2014-03-26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미술작가 수연(고은아)은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갤러리를 전전하지만 그림이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수연은 방에 틀어박혀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담배만 피우며 그림에 몰두한다. 수연이 사는 빌라 앞에 조그만 케이크 가게가 생긴다. 어느 늦은 저녁, 수연은 케이크 가게를 찾지만 영업이 끝난 뒤다. 가게 주인 창민(박재정)은 그런 수연이 어딘가 안쓰러워 남은 재료로 케이크를 만들어주지만 그녀는 한입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가게를 떠난다. 어느 날 수연은 자신의 방문 앞에 창민이 두고 간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를 발견한다.

수연이 미술을 하는 사람이 겪을 법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현실적인 캐릭터라면 창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수연의 캐릭터가 얄팍한 전형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창민의 독특한 캐릭터 설정이 극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창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연인에게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실연당한 상처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남자가 어째서 연인의 부담스러운 마음은 제때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아해지면서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지고, 그 아픔에도 공감하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설정은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도를 위해 꿰맞춰진 것이라는 혐의를 짙게 풍긴다. 제작진은 관객이 혹시라도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까 안절부절못하면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고민하는 주인공이 있다면 그 이유나 상황을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면서 관객을 끌고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그녀가 상처받은 원인이 된 말을 보이스 오버로 처리하는 손쉽고도 낡은 방식에 기댄다. 마치 세련된 것처럼 위장된 분위기는 감추려던 어설픔만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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