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미친 듯이 살아버린다는 그 자유의 느낌
2014-04-03
글 : 김연수 (작가)
소설가 김연수가 월터 살레스의 <온 더 로드>를 보고 떠올린 심상

두서없다고, <온 더 로드>에 대해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첫 공개된 2년 전 칸 영화제에서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길 위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물며 영화의 원작이 된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라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를 지녔던가. 소설가 김연수가 <온 더 로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순간은 보름 전 어느 오후였다. 그리고 더 멀리, 고교 시절 <길 위에서>라는 소설을 ‘전설’로 전해듣던 때로 추억은 나아간다. 영화가 재현해내는데 실패한 그 결정적 불꽃은 무엇일까.

지난 3월 초, 도쿄에 다녀왔다. 도쿄국제문예페스티벌이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열리는 이런 행사와 달리 일본쪽은 작가들의 개척 정신을 꽤 존중하는 듯했다. 입국해서도 혼자서 택시를 타고 아오야마의 호텔까지 갔고, 떠나는 날 차편도 기념백에 넣어준 하네다행 리무진 티켓(사전예약 필수!) 한장으로 해결하더라. 덕분에 두번의 행사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혼자 지낼 수 있어서 꽤 좋았다. 도쿄에서 이런 여유를 부린 것은 실로 15년 만의 일이었다. <꾿빠이 이상>을 쓰기 위해 취재간 것이니까 당연히 공식 일정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지하철을 타려고 노선표를 올려다보노라면 요금이 터무니없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뭐 그럭저럭이랄까. 대신에 이번에는 요금보다 여전히 종이 승차권을 사용한다는 게 더 인상적이었다. 잃어버릴까봐 오른손으로 그 승차권을 꼭 쥐고 지하철 문 옆에 기댔다. 눈을 감으니 대입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지하철을 타던 시절이 떠올랐다.

회상은 감미로웠다. 다시 눈을 뜨면 어느새 시간은 1989년 서울로, 그러니까 노란색 종이 승차권을 잃어버릴까봐 손에 꼭 쥐고 있던 스무살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마저 들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그 느낌은 도쿄에서 머무는 내내 계속 이어졌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담배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시부야의 한 식당에 들어가 카운터에 앉았는데, 재떨이가 앞에 있었다. 지하이고 바로 뒤의 테이블에서는 여성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담배를 피워도 된단 말인가, 라는 의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기분 좋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도 그 기회를 놓치긴 싫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 가장 좋아했던 담배인 캐스터를 사왔다. 하지만 좀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이제 사회적으로 금지된 일이니까. 과연 피워도 될까? 나는 캐스터를 만지작거렸다.

케루악이 <길 위에서>를 쓰지 않았더라면…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온 더 로드>를 보는데, 보름 전 그 식당에 앉아 있던 일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담배를 어찌나 피워대던지. 한 20년만 젊었어도 흡연 욕구를 참지 못하고 도중에 극장을 뛰쳐나올 뻔했다. 하긴 그땐 극장에서도 버젓이 담배를 피웠으니까 그럴 일도 없었겠구나. 비록 소극장에서나 가능하긴 했지만, 스크린 속 주윤발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을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최첨단 4D영화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영화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덴버로 돌아갈 때 딘 모리아티와 카를로 막스는 버스에 타자마자 담배를 피우는데, 스무살 시절의 나도 졸다가 깨면 버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웠다. 또 돈이 떨어진 샐 파라다이스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하철 플랫폼의 모래 재떨이에서 담배를 줍고 다녔다. 지하철이 들어오면 피우던 담배를 모래에 찔러넣고 승차하는 승객이 많아 거기에는 양질의 ‘장초’가 흔했다.

돌이켜보면 고교 시절의 내게 이 영화의 원작인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담배 같은 것이었다. 금지됐다는 그 이유만으로 갈망하게 만드는 것. 내가 <길 위에서>라는 소설에 대해 알게 된 건 <월간팝송>에 실린 ‘도어스’ 스토리에서였다. 그 기사는 1965년 7월8일, 로스앤젤레스 베니스 비치의 해변에서 짐 모리슨과 레이 만자렉이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에서 시작했다. 이윽고 이야기는 짐 모리슨의 사람 됨됨이로 넘어가 십대 시절 그가 열심히 읽은 책이 바로 비트 제너레이션의 고전 <길 위에서>라는 구절이 나왔다. 키보디스트였던 레이 만자렉은 나중에 “케루악이 <길 위에서>를 쓰지 않았더라면, 도어스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짐 모리슨의 롤모델은 소설 속 딘 모리아티였다는데, 흥미로운 얘기다. 딘 역할을 한 개럿 해드룬드를 보다 보면 어쩐지 1991년 영화 <도어즈>에 나온 발 킬머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때부터 <길 위에서>를 읽으려는 나의 노력이 시작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온 더 로드’를. 그래야만 <자본>을 ‘다스 카피탈’이라고 부를 때처럼, 이 소설의 불온한 느낌이 확 살아나니까. 그 시절에는 이 책들 말고도 <황톳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노동의 새벽> 등등 금지된 서적들이 많았다. 사실 <길 위에서>가 실제로 판매금지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당시에는 당연히 금지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교육 시스템을 비판한다고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이 판매금지되던 시절이었으니까, 대마초와 벤저드린과 섹스가 난무하는 그런 소설이 출판되리라고 기대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The Wall>을 듣지 못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청계천에 가면 ‘빽판’, 그러니까 해적판을 구할 수 있었고, 턴테이블에 올려놓기도 전에 우리는 금지됐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음악에 빠져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길 위에서> 역시 그런 맥락에 놓여 있었다. 1989년 서울에서 그 소설을 읽는 건 난망한 일이었지만, 나는 이미 그 소설에 빠질 준비를 다 갖추고 있었다.

첫 단서는 당시 알고 지내던 편집자에게서 나왔다.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하도 많던 시절이라 장차 대학을 졸업하면 그 책들을 번역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당연히 <길 위에서>는 그중 첫 번째 책이었다. 그러자 해방 이후에 나온 출판물을 거의 모두 알고 있었던 그가 대뜸 그 책은 신구문화사의 전후문제작품집으로 이미 번역됐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 책은 ‘노상(路上)에서’라는 제목으로 1963년에 출판됐다. 미국에서는 1957년에 출판됐으니까 시간 차이는 많이 나지 않았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내 인생의 책’을 말하면서 가수 최백호씨가 <길 위에서>를 제일 먼저 꼽았는데, 그가 스물두세살 무렵에 읽은, 은밀하게 손에서 손으로 옮겨다니느라 책장이 다 떨어져나간 낡은 금서가 바로 이 <노상에서>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1970년대 초반에는 이미 이 책이 금서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소문하니 이 금서는 김중혁이 다니던 대학의 도서관에 수장돼 있었고, 친구 덕분에 나 역시 스물두세살 무렵은 <길 위에서>를 읽으며 보냈다고 회상할 수 있게 됐다.

소설과 영화가 갈림길에 서고

이런 맥락에 놓인 소설이었기 때문에 금지된 것을 읽는다는 은밀한 쾌감이 없어진 지금은 <길 위에서>를 읽는 보람도 상당히 사라지는 듯하다. 그러고 나면 이 소설이 꽤 길다는 느낌이 든다. 1951년 5월22일 케루악이 영화 속 딘의 실제 인물인 닐 캐시디에게 보낸 편지에는 4월2일과 22일 사이에 ‘너와 나와 길에 대한 이야기’인 12만5천 단어의 장편소설을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의 뒷부분에 나오다시피 케루악은 종이를 이어붙인 뒤 틈틈이 기록한 작은 노트를 보면서 타자기로 <길 위에서>를 썼는데, 그 길이는 36m에 달했다. 플롯이랄 게 없는, 네번에 걸친 미 대륙 횡단 및 멕시코 여행이 소설 내용의 전부다.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잭 케루악은 말론 브랜도에게 영화 판권을 사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지 않은 건, 아니, 못한 건 이야기가 없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6년간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던 이 두루마리 원고가 마침내 바이킹프레스에서 출간되는 데 큰 도움을 준 편집자 맬컴 카울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상적으로 좋은 문장이 들어 있었지만 도대체 이야기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극장의 조명이 꺼지고 샐이 히치하이킹한 트럭이 네브래스카 평원을 달리는 도입부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설마 멕시코 여행까지 다루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상에서는 이동 장면이 몇분으로, 심지어는 1분도 안 되는 분량으로 압축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이내 소설 전체가 시나리오로 옮겨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영화가 지루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였다. 말했다시피 원작 자체가 금지된 것을 향유한다는 맥락의 의미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 영화는 소설이 문학적인 문장 속에 감춰둔 동성애, 스리섬, 마리화나 등의 자극적인 소재들을 시각적으로 되살리지만, 그 역시 21세기 한국의 평균적인 관객에게는 큰 문화적 충격이 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길이라 메인 플롯은 그 길이 놓인 형태를 따른다. 소설을 펼치면 제일 먼저 지도와 함께 샐의 미 대륙 횡단 경로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생략했(혹은 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샐과 딘이 미 대륙을 어떻게 이동했는지가 드러나지 않으니 메인 플롯은 사라져버렸다.

메인 플롯이 사라진 할리우드영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다들 뛰어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떠올릴 테지만, 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온 더 로드>를 원작에 충실한 영화로 이해한다. 원작은 원래부터 “도대체 이야기가 없었”으니까. 문화사적 맥락을 모두 걷어내고 작품만으로 봤을 때, <온 더 로드>는 플롯을 충실하게 따르는 유럽 소설에 맞서 미국식 현대 산문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씌어졌다. 이 시도의 객관적 상관물은 바로 재즈의 즉흥연주이리라. 그래서 잭 케루악은 이 소설이 “시, 차라리 서술적인 시, 모자이크된 구전 서사시 같은” 것이라며 “유럽의 서술에서 미국의 시적인 ‘불규칙적인 전개’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게 바로 잭 케루악이 창안한 미국적 산문의 스타일인데, 아주 강한 실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그레일 마커스가 섹스 피스톨스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밴드의 음반은 “그것을 음미하는 그나 그녀가 통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라고 썼을 때, 이 말은 레이 만자렉의 발언과 공명한다. <길 위에서>는 실제로 수많은 짐 모리슨의 삶을 바꿨던 것이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 스타일이다. 이야기는 얼마든지 지루해도 상관없다.

영화 <온 더 로드>는 원작의 이 지루함은 고스란히 가져왔지만, 동시대인들의 삶을 바꿀 만큼 강했던 그 스타일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더 실험적이고 더 충격적이며, 때로는 시적인 영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우회로를 만들었는데, 그건 출판된 소설, 그러니까 짐 모리슨이 끼고 살던 1957년 바이킹판 <길 위에서>가 아니라 그 이전의 버전, 혹은 실제 여행담을 영화화하는 방법이다. <길 위에서>에 홀렸던 사람이라면, “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내와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라는 첫 문장을 기억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네브래스카 평원을 달리는 트럭에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샐의 아버지 장례식 장면이 나올 때,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샐에게 아버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 책에는 장례식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 차이에 대해서 월터 살레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케루악의 매형이 자신에게 보여준 원고에는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소설이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게 바로 “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라는 문장이다. 애당초 두루마리에 타자된 원고는 교정을 위해서 다시 타자됐는데, 그 판본은 현재 두 가지로 남아 있다. 심하게 교정된 297쪽짜리와 바이킹의 편집자도 교정에 참여한 347쪽짜리. 297쪽짜리 초고는 위에 옮긴 아버지의 죽음으로, 347쪽짜리 초고는 아내와 헤어진 일로 시작한다. 여러 정황상 297쪽짜리는 347쪽짜리보다 시간적으로 앞서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 두 가지 일은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다. 1944년에 케루악은 에디 파커와 결혼하지만 몇달 못 가서 헤어지고, 1945년에는 아버지 레오가 위암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1949년부터 닐 캐시디와 여행을 시작한다. 월터 살레스 감독이 출판본이 아니라 297쪽짜리를 각색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소설보다는 실제 인물들의 삶에 더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추측의 근거는 또 있다. <길 위에서>의 애독자라면 다음의 유명한 구절 역시 영화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는 오로지 미친 사람, 즉 미친 듯이 살고, 미친 듯이 말하고, 미친 듯이 구원받으려 하고, 뭐든지 욕망하고, 절대 하품이나 진부한 말을 하지 않으며, 다만 황금빛의 멋진 로마 꽃불이 솟아올라 하늘의 별을 가로지르며 거미 모양으로 작렬하는 가운데 파란 꽃불이 펑 터지는 것처럼, 모두 “우와!” 하고 감탄할 만큼 활활 타오르는 그런 사람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카를로와 딘은 서로 껴안고 뒹구는데, 이는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출판된 소설에서는 이 부분이 불분명하다. 이 소설을 출판하는 데 있어서 바이킹과 맬컴 카울리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외설성과 명예훼손이었다. 그래서 잭 케루악은 닐 캐시디는 물론 카를로 막스의 실제 모델인 시인 앨런 긴즈버그에게 ‘미국 문학의 이익을 위해’ 명예훼손 소송을 포기한다는 증서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렸는지 297쪽짜리에는 딘과 카를로의 성적 관계에 대한 구절을 타자한 뒤에 지운 흔적이 나온다. 살레스 감독은 이 지운 흔적을 다시 복원했다. 이로써 영화는 다시 한번 1957년 출판본에서 멀어져 원래의 삶쪽으로 한발 더 다가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온 더 로드>는 소설 <길 위에서>를 영상으로 옮겼다기보다는 비트 제너레이션의 사랑과 삶을 다룬 시대물이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아무리 마리화나를 피우고 스리섬을 한다고 해도 요즘의 눈으로 봤을 때 영화 속 젊은 영혼들의 일탈은 어쩐지 목가적으로만 여겨지니 말이다.

젊음이여, 청춘의 영혼이여

다시 도쿄로 돌아가, 시부야의 지하식당에서 나는 마침내 캐스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술집도 아닌 식당에서, 그것도 복잡한 점심시간에 담배를 피운 게 몇년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처음 얼마간은 뭔가 나쁜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에는 어쩐지 기이한 해방감. 마치 도쿄 지하철역의 종이 승차권을 손에 쥔 뒤에야 한때 내가 친구 하나 없이 서울에서 혼자 지내던 촌뜨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처럼, 그제야 나는 바로 그 해방감 때문에 종로 거리를 걸어다니며, 또 식당에 앉아 담배를 피웠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989년 <길 위에서>가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것 역시 바로 그런 해방감 때문이었으리라. <길 위에서>를 한 세대를 뛰어넘어 영원한 청춘의 소설로 만든 것 역시 이 자유의 느낌이다. 이 자유가 20세기 대항문화의 원천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프랜시스 코폴라는 그토록 오랫동안 이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어떤 충격적인 영상이라도 즉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영화를 통해 그 자유를 맛본다는 건 난망한 일이 됐다. 그런데 뛰어 넘을 금기가 없어져 오히려 무기력해진 지금의 청춘들이 ’온 더 로드’에 나오는 젊은 영혼들과 닮아 보이니 이건 또 어찌된 일인지. 오랫동안 <길 위에서>를 숭배한 나로서는 기이한 일이다. 관객이 꽉 찬 극장에 앉아 딘 모리아티와 함께 담배를 피우다 끌려나가기라도 해봐야 그런 기이한 느낌이 사라지려나, 어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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