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도시락을 통한 두 남녀의 진솔한 소통 <런치박스>
2014-04-09
글 : 김보연 (객원기자)

인도에는 무려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는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의 도시락을 배달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은퇴를 앞둔 회계사 사잔(이르판 칸)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다. 그 역시 작은 식당에서 도시락을 배달시키곤 하는데 하루는 다른 도시락이 도착한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그 정성에 감탄한 사잔은 도시락을 말끔히 비워 다시 돌려보낸다. 물론 이는 작은 배달 사고였지만 도시락의 주인인 일라(님랏 카우르)는 누군가가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 것에 큰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다음날도 맛있는 도시락에 다음과 같은 짧은 편지를 넣어 보낸다. “맛있게 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부터 사잔과 일라는 도시락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곧 깊은 속내까지 털어놓기 시작한다. 유머러스하던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이때부터다.

먼저 우리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인도의 문화와 두 남녀의 진솔한 소통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기획이 눈에 띈다. 인도의 젊은 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장편 데뷔작인 <런치박스>는 두 남녀가 편지를 주고받는 소재를 택함으로써 전형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안에 인도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을 생동감 있게 집어넣었다. 인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도시락 배달이란 설정은 물론,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간 전통 음식에 대한 묘사, 그리고 급격히 변화 중인 대가족의 모습 등 인도라서 가능한 사실적인 세부 묘사가 <런치박스>만의 색과 향을 더한다. <런치박스>의 두 번째 장점은 그 독특한 재료를 이용해 보편적인 고민까지 녹여냈다는 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마음 둘 곳을 쉽게 찾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들로 누가 따뜻한 밥 한끼만 차려줘도(또는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기만 해도) 금세 마음이 열리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에게 오히려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작은 위로를 구하는 모습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미리 말하자면 <런치박스>는 주인공들이 갑자기 세상의 고민을 모두 잊은 채 행복한 미래를 기다리는 거짓말 같은 해피엔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먼저 행동하는 대신 종종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이 고민과 걱정에 빠지는 침묵의 순간을 차분히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이 영화의 세 번째 미덕이다. 씁쓸함이 입안에 남지만 그 맛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음식 같은, 그런 미덕 말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