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x cross]
[trans x cross] 올해는 ‘몸의 해’로 정했습니다
2014-04-14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세 번째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펴낸 소설가 김중혁

만약 당신이 끝까지 비밀로 하고 싶었던 일이 당신 사후에 세상에 공개된다면? 김중혁의 세 번째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의 짜릿한 질문이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망자의 비밀을 깨끗이 지워주는 딜리터(deleter)를 등장시켜 사람들 사이의 비밀 관계를 파헤치는 그만의 독특한 탐정소설이다. 사람들 사이, 사람과 사물간의 은밀한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 틈새에 생기는 뭉근한 온기를 누구보다 사랑해온 작가답다. 어쩌면 그에게 세상의 비밀이란 수많은 사이들이 빚어낸 관계 지형도의 이음동의어일지도 모른다. 그가 글쓰기뿐 아니라 일러스트를 그리고 수영과 테니스를 하고 야구를 보고 즐기며 음악을 수집하고 연주하는 것도 세상의 비밀을 하나라도 더 읽어나가기 위함인 걸까. 소설가 김중혁에게 그 비밀스러운 독법에 대해 물었다.

-의뢰인 사후에 그의 비밀을 삭제하는 ‘딜리터’라니 특이하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가.
=‘딜리팅, 딜리터’라는 말은 이번에 생각해낸 거지만, 이와 관련된 생각은 그전부터 해왔다. 디지털 장례식(사후 인터넷에 남은 개인정보를 지워 신변을 정리하는 일을 가리킨다.-편집자)에도 관심이 있었고. 마침 탐정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이 이야기로 써보면 좋겠다 싶더라.

-혹시 소설가 김중혁에게도 딜리터가 필요했던 건 아닌가.
=소설 속 주인공인 구동치의 첫 번째 고객이 소설가다. 나 역시 작품을 내놓기까지 창피한 과정을 많이 거친다. 만약 그런 게 다 공개되면 어떨까. 오직 작품으로만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부끄러운 게 되게 많다. (웃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죽었는데 내게 치명적이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다.

-재밌는 건 구동치가 고객의 비밀을 따로 보관한다는 거다. 결국 비밀은 완벽하게 사라질 수 없는 건가.
=첫 번째 장편 <좀비들>을 쓸 때였다. 자료 조사를 핑계로 북유럽의 묘지 순례를 갔는데 기분이 묘했다. 각각의 묘지마다 비밀이 하나씩 묻혀 있는 것 같더라. 사람 관계가 복잡하듯 비밀의 관계도 복잡한 게 아닐까. 비밀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사람은 비밀 없이 살 수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F/B1> <악기들의 도서관> 등 전작들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장/단편을 써오면서 조금씩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됐다. 내가 되게 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는 것 말이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서사를 움직여 나가는 동력도 큰 사건이라기보다는 소소한 농담과 동네 사람들의 관계다. 소설이 끝날 때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크게 바뀐 건 없고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만 남는다. 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은 것 같다. 내가 장르적 장치들을 가져오는 건 그런 미세한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확실하고 강력한 구조물이 있어야 미묘하고 섬세한 것들이 더 잘 드러난다. 조금은 도식적으로 보일지라도.

-단편/중편/장편소설과 에세이를 두루 쓰고 있다. 각각의 매력이 다 다를 텐데.
=에세이 쓸 땐 글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행복하다. 메모한 것들을 모아서 정리하면 금방 쓴다. 장편은 이야기로서의 쾌락이 있어 가장 재밌다. 현실과 닮아 있지만 그와 별개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세계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제일 힘든 건 단편.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건 장편과 똑같은데 분량이 적다보니 많은 걸 버려야 한다. 생각했던 세계의 뼈대만 가지고 써나가야 하니 쉽지가 않다.

-혹시 소설 속 인물들처럼 일기를 쓰나.
=일기라기보다는 메모에 가깝다. 사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순간 그 생각이 고정돼버리는 것 같다. 그냥 생각을 공 굴리듯 이리저리 굴린다. 글로 쓰는 건 청탁이 오면. (웃음) <씨네21>에 연재를 하는 것도 한 가지 테마를 붙잡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올해 초 ‘김중혁의 바디무비’로 <씨네21>에 세 번째 연재를 시작했다. 몸을 테마로 꺼내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마흔네살이다. 이제야 비로로 몸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혈기왕성한 때도 지났고 완전히 노쇠한 상태도 아닌, 몸의 기능이 퇴화해가는 과정을 잘 느낄 수 있는 때가 사십대가 아닌가 싶다. 몸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고.

-<씨네21>에 글을 쓸 때면 “수다스러워진다”고 밝힌 바 있다.
=워낙 잡지를 좋아하는 데다 주간지라는 게 좋다. 한주 동안 어떤 게 볼만한지 다뤄주니까. 그 역할이 되게 소중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앙앙>에 몇 십년째 연재하지 않았나. 좋은 주간지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매체에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긴달까. 글도 약간 느슨하게 쓰고 싶고. 매호 공을 들이기보다는 조금은 사적이고 엉성한 글들을 쓰지만 그게 쌓여 시간이 지난 뒤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쓰기, 일러스트레이션, 음악, 스포츠 등 관심사가 정말 다양하다. 요즘에는 무엇에 끌리나.
=‘김중혁의 바디무비’가 가장 큰 관심사다. (웃음) 올해를 ‘몸의 해’로 정했다. 또 낭독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형식을 고민 중인데 게을러서 잘될지는 모르겠다.

-아지트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정말 호기심 왕성한 아이였을 것 같다. 소년 김중혁 말이다.
=그런 공간을 좋아했다. 말썽꾸러기는 아니었지만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참 좋아했고. 관계 중심적인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풍경이 계속 내 소설 속에 들어오는 것 같다. 그때처럼 급하지 않게 조금은 느슨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지금도 비밀 아지트가 있나.
=작업실? 동굴 같다. 블라인드를 거의 올리지 않고. 한번 들어가면 잘 안 나온다.

-이번 소설에서 ‘가장 소중한 걸 피오르드에 던지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던지고 싶은 게 있다면.
=(한참 고민하다) 내 책을 던지고 싶긴 하다. 책은 가라앉나? 뜨나? 지구에 민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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