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현빈은 배우로서 가장 정점에 섰을 때 돌연 입대해 대중을 놀라게 했다. 군생활이 현빈에게는 긍정적인 휴식기가 돼주었던 모양이다. “군대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는 현빈은 “연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공간에서 배우로서 다져온 일들과 연기를 하며 보낸 이십대를 찬찬히 돌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3년간의 ‘휴식’을 끝내고 돌아온 현빈은 복귀작으로 이재규 감독의 <역린>을 택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4권’에 기록된 1777년(정조 1년) 7월28일의 정유역변은 ‘궁궐 내에 도둑이 들어 사방을 수색하게 하다’ 라는 기록에서 출발한다. 아비 홍지해를 귀양 보낸 정조에게 앙심을 품은 홍상범이 호위군관 강용휘, 자객 전흥문과 궁중나인을 매수해 정조를 암살하려 한 사건이다. 건드려서는 안 될,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는 <역린>은 정유역변이 벌어진 그날 하루를 배경으로 정조와 정조를 죽이려는 자, 정조를 지키려는 자의 관계를 15년 전부터 얽힌 이들의 과거와 교차시켜 드러낸다.
현빈은 처음 도전하는 사극인 <역린>에서 정조를 연기한다. 그간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정조를 위엄 있는 성군 혹은 강건한 개혁군주로 묘사해온 것과 달리 <역린>의 정조는 아버지(사도세자)를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덜컥 왕이 되어 벽파의 끊임없는 위협을 견디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려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여성성이 강하지만 그 안엔 엄청난 남성성이 숨어 있는 인물”로 정조를 그려내고자 한 이재규 감독의 의도대로 현빈은 불안하고 위태로우나 성실하고 영민한 청년 정조를 만들어냈다.
-<역린>은 정조만 홀로 돋보이는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복귀작으로 <역린>을 택한 것은 어떤 연유에서였나.
=맞다. <역린>은 원톱영화가 아니다. 정조 즉위 직후에 벌어진 상황이 중심사건일 뿐 <역린>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모두 다룬다. <역린>을 하기로 한 건 오로지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이전에 사극을 해보지 않아 선택한 것도 아니다. 역사적 사실 이외의 허구가 가미된 부분에서 재미를 느꼈다. 정조 역을 제의받고 시나리오를 읽는데 살수 역도, 상책 역도 탐이 나더라. 보통은 제의받은 역할이 괜찮은지를 보게 되는데 <역린>은 이 역할, 저 역할이 다 눈에 들어왔다.
-3년 만에 촬영장에 들어선 소감이 어땠나.
=군대에 있을 때부터 엄청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촬영장에서 느꼈던 행복감이나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기쁨에 대해 나도 모르게 좀 무뎌졌던 것 같다. 나에겐 직업이니 일처럼 그냥 해왔는데 그 일을 막상 못하게 되니 갑갑함이 생겼다. 첫 촬영 때가 기억난다. 무척 기대했고, 엄청 긴장했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지, 저건 어떻게 해야 하지’ 갈팡질팡했다. (웃음) 새벽에 영조의 어진에 인사드리러 가는 장면이 첫 신이었다. 인사하고 나니 복귀했다는 느낌이 들더라.
-처음 도전한 사극이기도 한데 가장 난관에 부딪혔던 순간이 언제였나.
=말과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역할이 왕이다보니 진중하고 근엄한 태도로 걸음도 정확히, 말도 정확히 해야 했다. 말하는 동안 손짓을 하고 싶은데 움직임도 자제해야 했다. 대사톤과 뉘앙스에 대해 감독님, 음향기사님과 얘기도 많이 나눴다. 감독님은 사극이라고 특별히 다른 톤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왕이라고 하면 보통 근엄하고 낮은 음색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정조는 왕이긴 해도 영화에선 고작 스물여섯밖에 안 된 청년이다. 그렇다면 1년차 왕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뭘까 고민했다.
-드라마 PD였던 이재규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다. 감독의 야심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촬영하면서 뭐라고 언질을 주던가.
=메이킹 필름을 만들 때 감독님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기에 ‘착한 여우’라고 답했다. 좋은 뜻이다. (웃음) 오늘 촬영분은 어떻게 찍고, 어떻게 편집할 것이며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가 다 감독님의 머릿속에 있었다. 컷 수도 워낙 많은 현장이었고 오픈 세트라 낮과 밤을 확실히 지켜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많았는데 감독님이 컨트롤을 잘하시더라. 이재규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촬영이 더 힘들었을 거다. 배우와 스탭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뽑아내야 할지도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굉장히 착한 방법으로 해내셨다. (웃음)
-‘땀으로 흥건한 등짝은 세밀한 근육으로 완벽하다.’ 시나리오의 이 한 문장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정조의 액션 장면은 많지 않지만 무예가 자연스레 몸에 익은 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만드는 데 상당히 공들였을 것 같다.
=왕이라면 좋은 음식을 먹었을 테고, 크게 움직일 일도 없었을 거란 생각에 꼭 몸이 좋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 안의 정조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 싶어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사 이전에 이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란 생각이 들더라. 제작보고회 때 (사회를 맡은) 박경림씨가 “등으로 말을 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진짜 그러길 바랐다.
-정조는 영화와 드라마가 가장 사랑한 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숱하게 다뤄진 인물이다. 촬영 전에 연구도 많이 했겠다.
=관련서적을 좀 읽었다. 실존 인물이라 내가 완전한 허구로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사람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으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려오지 않나. 희한하게 그 당시에 정조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자료가 눈에 많이 띄었다.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도 관심 있게 봤다. 영화나 드라마는 찾아보지 않았다. 선배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하셨을지 무척 궁금하긴 했지만 그걸 보게 되면 그 캐릭터가 머릿속에 남아 있을까봐 일부러 피했다. 문무에 능한 캐릭터라 말타기, 활쏘기, 검술 등도 미리부터 연습했다.
-이재규 감독의 표현대로 현빈의 정조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드러내는 건 각각 어떤 지점에서인가.
=신료들을 앉혀놓고 “얼마나 알고 있소?”라고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적들 한가운데에서 정조가 뜻을 굽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다. 남성적인 젊은 왕의 모습, 개혁군주로서 정조의 면모가 드러난 장면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 등 정조의 여성성은 섬세한 부분에서 보여진다. 개인적으로는 정조가 안타깝고 불쌍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정조는 암살 위협 때문에 잠을 자는 대신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고 기록에 남아 있지 않나. 나는 정조의 등근육장면을 찍기 위해 늘 촬영 전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러 다녀야 했다. 평균 수면시간이 서너 시간밖에 안 돼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간접적으로 정조와 비슷한 삶을 살다보니 어릴 때부터 이렇게 살아온 정조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불안해했을까 싶더라.
-정조와 내관 상책의 관계는 청춘물의 단짝친구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상책 역을 맡은 정재영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나.
=촬영이 거듭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안 해도 서로 의중을 알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 끝에 가서 정재영 선배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을 찍을 땐 진짜로 뭔가가 왔다. 뵙기 전엔 정재영 선배가 무서운 사람일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정반대시더라. (홍국영을 연기한) 박성웅 선배는 ‘상남자’이면서도 굉장히 가정적이고 따뜻한 분이셨다. 그래서 셋의 조합이 잘 맞았다. 선배들께 계속 그랬다. “이번엔 제가 빌붙어서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웃음)
-<역린> 이후의 행보는.
=지금도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 성격상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작품을 못 찾았다. 120%, 130%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항상 촬영 전에 버전을 두세개씩 준비해간다. 그런데도 오케이 사인을 받고 나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매번 ‘에이 아깝다, 이때는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생각한다. 그런 아쉬움들이 좀더 작아질 때가 오면, 지난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튼 같은 이중인격자 역할을 해보고 싶다. 이십대 초반에 <아일랜드>에서 경호원 역할을 했는데 사십대가 돼서 경호원 역할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해보고 싶은 것 많다. 안 해본 게 더 많아서.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