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뛰면서 배우는 걸로~
2014-04-25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마이 보이> 전혜림 스크립터

2014 <화가> 2013 <마이 보이> 2012 <소리 없는 남자> 2012 <무게>

“초콜릿 어디 있어?” <마이 보이>의 스탭들은 당이 필요할 때면 전혜림 스크립터를 찾는다. 그녀의 양쪽 주머니와 가방에는 언제나 미니 초콜릿 바가 두둑하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독님의 간식이다. 부족하지 않게 미리 챙겨두다 보니 스탭들도 종종 찾는다.” 스크립터의 위치와 업무의 특성을 들여다보면 초콜릿 공급원이 된 그녀가 낯선 일도 아닌 것 같다. “현장에서 감독 다음으로 모니터를 많이 보는 사람”이 바로 스크립터이다. 감독의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배우의 연기, 동선, 현장의 소품과 의상 등의 위치와 상태를 스크립트지에 꼼꼼하게 적는다. 바로 전 신과 다음 신의 연결이 매끄러우려면 이런 디테일들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감독의 지시 사항도 빠르게 기록하는 게 스크립터의 일이다 보니 평소 감독의 스타일과 습관을 알아두는 것도 유용하다. “전규환 감독님 현장에는 콘티가 따로 없다. 콘티는 오직 감독님의 머릿속에만 있다. 그러다 보니 스탭으로서는 쉽지 않다. 게다가 감독님은 현장에서 제일 많이 뛰는 분이다. 나도 덩달아 뛰게 되는데 체력이 달리더라.” 2년 전 스크립터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뒤 그녀는 줄곧 전 감독의 현장에서만 일했다. <무게>의 회계를 시작으로 <마이 보이> <소리 없는 남자>에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 일을 하고 싶었다. 플롯, 미술, 패션 공부도 좀 했는데 영화 일에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전규환 감독의 차기작인 <화가> 때는 스크립터를 하며 의상까지 도맡았다.

경력은 짧지만 최근 몇년간 전 감독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명이 그녀다. 그만큼 그녀 또한 전 감독에게 영향을 받은 게 있지 않을까. “감독님이 워낙 디테일하다. 옷 결, 이불 결 등 결을 중시하고. 단역의 양말 색깔, 바지 길이까지도 잡아낸다. 나도 그런 걸 한번 더 보게 되더라.” 스크립터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때론 현장 스크립트지를 들고 감독과 함께 편집에도 참여한다. “전 감독님은 편집 시 스크립트지에 의지하기보다는 찍은 영상 소스들, 심지어 NG 컷까지 다 다시 본다. 평소에 여러 컷을 많이 찍어두는 것도 편집하기 애매할 때 쓰려는 거다. 감독님 말을 빌리면 ‘편집 밥’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장과 감독으로부터 보고 듣는 게 많다 보니 그녀의 포부도 자연스레 좀더 커졌다. 막연한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감독의 꿈을 조금 앞당겨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독님이 일단 하면서 배우는 거라고 조언해주시더라. 시나리오는 탈고했고 조만간 장편으로 데뷔할 것 같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싶다’는 감독님의 평소 지론처럼 나도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식의 카메라앵글과 워킹, 조명 등을 쓰면 새롭게 보일 수 있지 않나 싶다.”

파일 케이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현장에 나갔다. 두손에 촬영 스케줄표와 스크립트지만 달랑 들고는. 두툼한 종이들을 한 아름 안고 서 있는데 비가 쏟아지더라. 이 파일 케이스는 그때 구입했다.”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파일 케이스지만 그녀에게는 두고두고 자신의 첫 번째 영화 현장을 되새기게 하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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