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다. 불온, 부당, 불편한 공기를 두르고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 렌즈 위에 살점이 튀고 화면 아래 피가 낭자할 때 누군가는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칭찬하고 누군가는 근본 없는 폭력의 전시에서 고개를 돌린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영화는 단순하다. 적과 아군이 선명하게 갈리는 흑백의 세계. 당신은 도식적인 상징과 허무한 과잉으로 범벅이 된 이 세계를 앞두고 한발 내딛을 것인가, 발길을 돌릴 것인가. 폭력, 컬트, 영화광, 잡종성, 마초 등 니콜라스 윈딩 레픈에게 가닿을 여러 단어들을 모아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본다.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야생의 충동을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하는 방식으로 유명세를 탄 덴마크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똠양꿍’ 내음 가득한 몽환적 신작 <온리 갓 포기브스>로 찾아왔다. 방콕의 환락가에서 타이 복싱장을 운영하는 줄리언(라이언 고슬링)은 마약밀매를 하던 형 빌리가 미성년 성폭력으로 살해당하자 범인을 찾아 나선다. 아들의 장례식을 위해 방콕에 온 엄마 크리스탈(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은 줄리언에게 형을 죽인 자를 찾아 복수하라 명한다. 줄리언이 형의 죽음의 배후에 타이의 전직 경찰 ‘챙’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도덕적으로 모호한 복수의 이야기가 본격화된다. 스칸디나비아적 운명론, 그리스 신화적 욕망론, 할리우드 컬트무비의 폭력성, 여기에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는 타이를 배경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초현실주의적 터치를 가미했다.
조도로프스키와 박찬욱 사이, 토브 후퍼와 타란티노 사이, 크로넨버그와 린치 사이에서 배회하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논쟁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컬트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영화 스타일은 여러 문화권과 거장감독의 스타일을 경유하여 잡종적 특이성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되는 한편, 윈딩 레픈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재하며 허세 가득하다는 혹평도 듣고 있다. 자신이 숭배한 상투적인 것들을 모아다 모방하는 오리지널리티 없는 스타일의 과잉은 그의 영화를 불신하는 이들의 강력한 불만이다. 다른 한편에서 금욕적인 개인주의자의 무드를 전면화해 ‘장 피에르 멜빌의 재림’(장병원)을 보는 듯하다며 그가 만들어낸 범죄영화의 매혹을 상찬하기도한다. 신작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는 호불호가 더 극도로 갈릴 듯하다. 불쾌하고 잔혹한 포르노 키치인가 심오한 도덕적 심문에 대한 스타일리시한 영화인가. 근친상간, 눈알 후비기, 신체관통이 횡행하는 신작을 중심으로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과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본다.
난독증의 영화광
야생의 아이(l’enfant savage)로 알려진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컬트 스릴러 키드로 자라나 핏빛 폭력으로 물든 스타일의 영화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드라이브>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온리 갓 포기브스>는 2013년 칸영화제 경쟁작에 오르는 등 주목받는 신예감독으로 발돋움했다.
윈딩 레픈은 197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출생, 8살 때 뉴욕으로 건너가 10대를 미국에서 보냈다. 17살 때 덴마크로 돌아왔고 덴마크 필름스쿨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중퇴했다. 아버지는 라스 폰 트리에와 작업하며 <안티크라이스트> <어둠 속의 댄서> <브레이킹 더 웨이브> 등을 편집한 앤더스 레픈이고 삼촌은 덴마크 영화감독인 피터 에밀 레픈으로 전형적인 영화가족 출신이다. 덴마크 거장 라스 폰 트리에는 그의 강력한 영화계 멘토이기도 하다. 토브 후퍼, 존 카펜터, 마틴 스코시즈 키즈이던 그는 24살 때 극도로 폭력적인 영화인 <푸셔>(1996)로 강렬하게 데뷔했다. 폭력적인 연출 스타일은 데뷔작과 유사한 성향의 <블리더>(1999)로 이어졌으나, 자기복제적 연출로 인해 세 번째 작품인 <피어 X>(2003)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어 그는 덴마크에서 <푸셔>의 2편, 3편을 연출하며 푸셔 트릴로지를 완성시킨다.
라스 폰 트리에로부터 <디어 웬디> 연출을 제의받았으나 그는 이를 엎고 2006년에 자신의 시나리오 연출작 <발할라 라이징>에 착수했다. 영화의 모티브는 5살 무렵에 그의 어머니가 들려주던 북유럽의 신화적 이야기에서 따왔다.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그는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2009)의 연출 제의를 받고 이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폭력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며 현실도피적인 이 영화는 악명 높은 영국의 범죄자 찰스 브론슨의 실제 삶을 소재로 하였다.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기독교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충돌을 다룬 폭력적 판타지 <발할라 라이징>은 2009년에 완성되었다. 미국의 범죄소설가 제임스 샐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이브>는 그의 본격적인 할리우드 데뷔작이다. 윈딩 레픈은 영화 촬영 때 리허설 없이 시간순으로 촬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은 영화 <드라이브>를 찍었지만 실상 운전면허시험에서 8번이나 낙제해 면허도 없다. 핏빛 낭자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색맹에다 난독증자라고도 한다.
성적으로 미숙한 스테로이드 마초
윈딩 레픈의 영화는 폭력적이고 불온하다. 특이한 점은 그의 영화에 폭력의 고양은 있지만 성적 엑스터시가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주로 마초 남성이며, 여성주인공은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설정으로만 머문다.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 <드라이브> <온리 갓 포기브스> 등을 보면 극도로 잔혹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뜻밖에도 남성주인공들이 유아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영국 최장기 복역수의 실화를 다룬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에서 주인공은 가석방되어 나온 뒤 스트립걸에 반해 그녀에게 줄 반지를 훔친다. 스트립걸이 무릎 위에 앉자 당신보다 덩치 큰 남자를 흥분시키면 안 된다고 말하는 브론슨은 성적 흥분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그가 훔친 반지는 결국 스트립걸의 손에 끼워지지 못했는데, 반지와 손가락이 지닌 성적 상징성을 감안해볼 때 브론슨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미숙한 마초다. 영화 <드라이브>의 익명의 주인공(라이언 고슬링)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는 이웃의 여인(캐리 멀리건)과 슬쩍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
윈딩 레픈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연출작인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는 이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줄리언은 스트립걸을 관음할 뿐 그녀와 성적 접촉을 갖지 않는다(접촉은 오로지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지만, 그 역시 인터코스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줄리언의 강력한 엄마가 죽은 뒤 그가 시체의 배에 난 상처에 손을 집어넣는 장면은 매우 작위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늘 형의 성기와 자신의 성기를 비교하며, 자신을 성적으로 미숙한 남성으로 치부하던 엄마의 신체에 최초로 무언가를 삽입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정의의 대리인에 의해 그의 남성성의 상징인 두 주먹을 잘리는데, 이는 엄마에 대한 금지된 욕망에 대한 자기 거세를 받아들이는 모습처럼도 보인다.
물리적으로는 초인적 힘을 지닌 남성주인공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는 성적 관능이 없다. 여성들의 신체는 극장화된 공간(스트립쇼장, 핍쇼장 등)에서 전시되며 인터코스는 주인공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발기부전의 스테로이드 신체이자 삽입하지 못하는 남근. 그의 영화를 간단히 논평하자면 위와 같다. 관능, 엑스터시, 인터코스가 배제된 이러한 폭력과 관능의 결합은 매우 미묘하게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봉쇄해버린다. 이 미진함을 예술영화적 잔념으로 착각하기 쉬울 듯하다. 많은 평자들이 논하듯 그의 영화 주인공들은 금욕적 전사 내지 멜빌 스타일의 성숙한 남성이 아니다. 여성의 질이 아니라 엄마의 자궁을 그리워하는, 신체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이에 머문 미숙한 마초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정복과 승리가 아니라 복종과 체념이다.
복종과 체념의 정서
비극적이고 황량하며 몰락의 정서로 가득한 게르만 신화를 소재로 한 <발할라 라이징>에서 피와 살점이 튀는 폭력의 향연은 세계의 종말로 향한다. 장기수 브론슨은 사랑에서도 예술에서도 가능할 창조와 생산의 가능성을 봉인해둔 채 파괴와 자멸을 향한다. 복수를 향해 움직이지만, 외부에 모호한 기원을 둔 복수에 추동된 기이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이브>와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 주인공들은 타자의 욕망에 의해 자멸(거세)로 향한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장렬한 종말과 운명에 대한 체념으로 끝난다.
자비심 없는 세계, 온정 없는 관계는 주인공을 세계에서 물러난 아웃사이더로 만든다. 도덕적 기원이 모호한 타자에 의해 추동된 복수심으로 인해 고요하고 과묵한 주인공은 어느 순간 광란의 전사(berserker)가 되어 이성의 제어 없는 폭력의 분출을 보여준다. 폭력의 분출 이후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거세라는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체념의 정서를 보인다. 마초이즘을 전시하는 극도의 폭력을 전시하는 영화들이지만, 주인공은 의외의 존재에 복종적이며 결말은 상당히 체념적이다.
절제된 대사, 유려한 리듬, 그리고 폭력의 쾌감. 이러한 영화적 특징은 미숙과 결핍을 은폐하려는 위장술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일견 복고적으로 보이는 스타일은 사실상 주제적 퇴행의 결과다.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는 타이의 네온색 강렬한 밤의 공간이 주무대가 된다. 남녀관계에 서툴고, 엄마에게 성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남성의 퇴행과 골몰은 극에 달한다. 복수도, 관용도, 승화도 이루어내지 못한 주인공은 어쩌면 자신의 거세를 강력하게 열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폭력은 난무하지만, 유사 오르가슴만 가득하기에 그의 영화는 거대한 성적 은폐극이다. 인터코스가 두려운 마초는 거세를 열망한다. 물론 그 퇴행적 유아성과 스타일의 과잉만을 즐기고 싶다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여성공포증을 지닌 성적으로 미숙한 마초가 복종과 체념의 정서를 내면화한다는 맥락에는 얼핏 파시즘의 시취가 돌고 있는 듯 불길한 것이 사실이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마초들
노르딕 히어로 매즈 미켈슨
요즘 가장 핫한 덴마크 배우인 매즈 미켈슨은 윈딩 레픈의 데뷔작 <푸셔>에서 조연으로 시작, <푸셔2> <블리드>에 출연했다. 주연작 <발할라 라이징>에서는 북유럽 신화의 오딘을 상기시키는 살육자이자 초인적 전사인 ‘원아이’로 등장했다. 그는 <발할라 라이징>, <로얄 어페어>와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등의 유럽영화를 통해 국제적 배우로 발돋움하고 있다.
켈틱 워리어 톰 하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역을 맡은 톰 하디의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영화는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이다. 스테로이드 육체미의 절정을 보여준 이 영화에서 톰 하디는 거친 육체에도 불구하고 성적으로는 미숙한, 애정 결핍의 페르소나를 잘 보여주었다. 할리우드의 세련된 상업영화에 등장해도 톰 하디의 정체성은 기묘하다. 켈틱 전사의 신체에 귀여운 소년의 미소가 결합된 부조화는 그의 배후에 묘한 우울감을 형성한다.
고독한 단독자 라이언 고슬링
디즈니 아역배우로 시작한 라이언 고슬링은 달콤한 멜로영화의 잔향을 거두어버리고 <빌리버>(2001)에서 단초를 보여준 배우적 아우라를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1)와 <드라이브>에서 정교화시켰다. 어쩌면 <드라이브>와 <온리 갓 포기브스>는 윈딩 레픈의 영화라기보다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다. 특히 <온리 갓 포기브스>의 줄리언은 내면적 파시스트이자 과묵한 마초이며 실상 성적으로 미숙한 남성이다. 그것이 그의 셀프 아이덴티티로 보일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