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1930)에서 클럽의 가수인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객석의 야유를 받는다. 남자들, 특히 군인들이 대부분인 관객은 굳이 남장을 한 여성을 보고 싶어 하진 않았다. 디트리히는 백색 턱시도를 입고, 다리를 벌리고 서서, 객석의 남자들을 아래로 내려다본다. 뒤이어 그녀는 남자처럼 다리를 휙 올려 객석의 난간을 넘어가고, 심지어 여성 관객의 입술에 키스까지 한다. 되돌아보면 스턴버그-디트리히 커플의 할리우드 첫 진출작인 <모로코>의 이 도입부 장면은 자신들의 영화적 운명에 대한 은유이기도 한데, 이들의 7번의 공동작업은 <모로코>처럼 할리우드의 관습을 매번 위반하는 것이었다.
스턴버그와 디트리히는 1930년 베를린에서 <푸른 천사>를 만들며 처음 만난다. 여기서 디트리히가 연기한 카바레 가수인 ‘롤라롤라’라는 유명한 팜므파탈이 탄생했다. 그녀의 등장 역시 놀람의 순간이었다. 아무리 카바레 가수라지만 입은 건 스타킹과 속옷 정도였다. 게다가 카메라는 스타킹을 신은 디트리히의 다리를 노골적으로 비춘다(이후 이런 장면은 스턴버그의 영화에서 종종 보게 된다). 롤라 롤라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십분 이용하여 점잖고 금욕적인 노교수를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추락시킨다. 말하자면 <푸른 천사>는 1950년대 필름누아르의 효시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요부를 만난 금욕주의자의 추락이라는 <푸른 천사>의 스토리만큼 주목을 끈 또 다른 특징은 공간의 미술적 표현이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독일 표현주의의 기괴한 그림 같은 세트와 곧 넘어질 것 같은 건물들이 들어선 마을 풍경을 보여주며 불안한 세상의 운명을 한눈에 짐작게 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대조되는 두 공간, 곧 엄격하다 못해 삭막해 보이는 학교 교실, 그리고 온갖 성적 상징이 넘쳐나는 밤무대의 불량한 실내는 그것만으로도 풍부한 상상거리를 제공했다. <푸른 천사>는 <선라이즈>(1927) 같은 무르나우의 작품과 더불어 독일 표현주의 전통이 할리우드로 이식되는 데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
스턴버그는 오스트리아 이주민의 아들인데 할리우드의 무성영화 시절부터 표현주의적인 형식으로 제법 주목받던 감독이었다. 데뷔작 <구원을 찾아서>(The Salvation Hunters, 1925)에서 선보인 하층민에 대한 애정과 명암 대비의 표현주의적 형식은 당대의 거물인 채플린의 주목을 받았고, 채플린의 제작으로 <바다의 여자>(1926)를 발표하며 할리우드의 다크호스로 성장한다. 특히 할리우드 최초의 갱스터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언더월드>(1927)에서의 흑백 대비의 뛰어난 조명 덕분에 스턴버그는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한 <마지막 명령>(1928)에서도 황제군의 화려하고 타락한 실내와 압제에 시달리는 평민들의 눈보라치는 벌판의 대비는 역사의 운명을 잠시 잊을 정도로 그 표현력이 압도적이었다. 역시 무성영화인 <뉴욕의 선창>(1928)은 선원과 창녀의 하룻밤 사랑을 그리는데, 안개와 물로 표현된 뉴욕, 그리고 흥청망청 춤추는 술집의 밤풍경은 스턴버그가 조명의 마술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했다. 말하자면 무성영화 시절 스턴버그는 표현주의 기법을 능란하게 다루는 멜로드라마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럴 때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만난 것이다.
스턴버그는 <푸른 천사>부터 <악마는 여자다>(1935)까지 5년간 7편의 영화를 디트리히와 함께 만든다. 스턴버그의 영화 속 디트리히는 영화학자 로라 멀비가 주장한 대로 페티시즘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디트리히가 주연으로 나오면서 스턴버그 영화에서 스토리는 덜 중요하게 다뤄졌다. 대신 디트리히의 이미지가 영화의 전면에 부각됐다. 이게 과거 무성영화 시절과는 표나게 다른 점이다. <모로코> 이후 <불명예>(1931),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 <블론드 비너스>(1932) 등은 계속하여 디트리히의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스턴버그는 페티시의 절시증적 쾌락이 영화 보기의 근본적인 즐거움이란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디트리히는 페티시를 자극하는 거의 모든 소품으로 자신을 장식한다. 긴 담뱃대, 긴 장갑, 정장 모자, 털이 많은 목도리, 그리고 모피 등이다. 그녀의 파트너들은 대개 담뱃대에 불을 붙여주며, 그 모피를 만지고 싶어 안달한다. 디트리히는 자허마조흐의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에서 채찍을 휘두르는 여성주인공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진홍의 여제>(1934)에선 실제로 군복을 입고, 손에 채찍까지 든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트리히의 매력은 <악마는 여자다>에선 남성 파트너를 지배하기도, 또 숭배하기도 한다. 성적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디트리히의 이중적인 정체성이 스턴버그 영화의 특성이 됐고, 이 점이 종종 당대의 통념과는 길항관계를 빚었다.
디트리히 주연의 영화를 만들며 스턴버그의 장식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 최고점은 <진홍의 여제>일 것이다. 러시아의 궁전은 고딕시대의 성처럼 모든 곳이 분열증적일 정도로 과장되게 장식돼 있다. 그림자가 짙어 그것이 침실인지 묘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인 여제의 내실, 끝이 보이지 않는 비밀통로, 성문처럼 큰 방의 문들, 커튼들, 베일들…. 아마 영화사를 통틀어 루키노 비스콘티만이 스턴버그의 장식 취미에 맞먹을 것 같다. 비교되는 점은 비스콘티는 공간을 리얼하게 재현하는 것이고, 스턴버그는 표현주의 전통에 따라 노골적으로 세상을 과장되게,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몄다.
수잔 손택은 스턴버그의 그런 형식을 ‘캠프’(Camp)로 설명했다. 스턴버그를 설명할 때면 자주 인용되는 <해석에 반대한다>에 수록된 ‘캠프에 관한 단상’에서다. 캠프는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고 과장된 것을 애호하는 특별한 감수성인데, 그것에 진정성이 있을 때면 이는 호사 취미를 넘어 예술에 이른다는 것이다. 손택은 캠프의 특징 가운데 ‘무절제의 기질’을 설명하며 디트리히가 주연한 스턴버그의 모든 영화를 그 사례로 꼽았다. 특히 마지막 작품인 <악마는 여자다>의 괴이한 탐미주의를 무절제의 기질이 넘치는 것으로 봤다. 그게 스턴버그의 남다른 예술가적 태도란 의미다. 캠프의 정점에 정체성이 모호한 디트리히가 있음은 물론이다.
디트리히와 헤어진 뒤 스턴버그는 예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지 못했다. 스턴버그는 필름누아르인 <마카오>(1952)로 잠시 복귀한 듯했지만 촬영 중간에 감독이 바뀌었고, 영화는 니콜라스 레이에 의해 완결된다. 스턴버그는 스튜디오를 벗어나 일본에 가서 <아나타한>(1953)을 만드는데, 여기서 그는 과거 디트리히와 작업할 때와 같은 열정을 되찾는다. 영화사는 일본판 ‘채찍을 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나타한>을 스턴버그의 마지막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말 그대로 ‘백조의 노래’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