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았다. 지난 1월9일 타이베이시에 자리한 영상자료원에 들어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배우 석준이었다. 호금전 감독의 <협녀> <산중전기> <공산영우>에 나왔던 배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의 얼굴에선 빛이 났다. 회고전 준비중일까?
신임 원장으로 부임한 린웬치 교수를 만나러 원장실로 갔다. 함께 <저 하늘에도 슬픔이>(김수용, 1965)의 듀프네거(네거필름을 똑같이 한벌 더 만든 것)를 확인하러 타이베이 외곽에 있는 수장고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2013년 9월 추석 연휴를 이용해 대만 영상자료원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시 내가 건네준 것은 대만에서 공개된 한국영화의 중국어 개봉제목 목록이었다(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의 권용숙, 김정구씨가 조사를 맡았다). 대만 영상자료원 담당자인 황테레사는 이전에도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필름 확인 요청을 한 적이 있어 조사해보았는데 없다고 했다. 중국어 제목으로 리스트를 만들었으니 재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원장인 린웬치 교수와는 싱가포르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던 허우샤오시엔 학술회의, 대만 여성영화 학술회의 등에서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어 구면이었다. 리스트를 주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9월19일 새벽 2시12분 린웬치 원장으로부터 메일 한통을 받았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한국-대만의 영화적 커넥션에 대한 연구에 나 역시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스탭이 조사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프린트들이 있습니다. <장남>(長男), 35mm, 상태 좋음. <추상촌초심>(秋霜寸草心, 저 하늘에도 슬픔이), 35mm, 좋지 않지만 볼 수는 있음. <누적소화>(淚的小花, 미워도 다시 한번), 16mm, 좋지 않지만 볼 수는 있음.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借種, 이두용, 1983), 좋지 않지만 볼 수는 있음. <추상촌초심2>의 예고편이 있지만, 완전히 산화한 것으로 보임.”
<저 하늘에도 슬픔이> 프린트가 있다는 언급을 보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카이브 피버(archive fever)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수술한 치아가 통증으로 아파왔다.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 스탭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한국 영상자료원의 조준형 부장에게 린웬치 교수와 주고받은 메일을 보냈고, 한국에 와 이병훈 영상자료원 원장을 만나 이 사실을 전했다.
아카이브 피버 이후 치과에 가 출산할 때 정도의 통증이 느껴지는 재수술을 받았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듀프네거가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기다리다가 겨울방학이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린웬치 교수에게 연락한 뒤 지난 1월9일 다시 대만 영상자료원을 찾았다. 앞서 말한 내용이다. 린웬치 교수는 저작권자 확인 서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 영상자료원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예의 배우 석준과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타이베이 외곽에 있는 필름 수장고로 향했다.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의 공동소장인 얼 잭슨 교수가 대만 자오퉁대학의 교수로 있어 린웬치 교수와 학문적 인연을 맺고 있는 것도 이 신뢰 프로세스에 큰 도움이 되었다. 린웬치 교수의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수장고는 필름의 진정한 고향처럼 느껴졌다. 창밖으로는 아열대 숲이 보이고, 필름이 담긴 상자들의 방, 방들, 포스터들이 그야말로 대만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린웬치 교수는 렌즈로 네거필름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고 내게도 보라고 권했는데 상태가 좋았다. 흑백 네거필름 안의 나무 이미지들, 그 음영이 사실과 초현실 사이의 어디쯤에서 형형했다. 잃어버린 영화, 사라진 영화, 비가시적 영화, 팬텀(phantom) 시네마, 유령 정전(canon), 그리고 텅 비거나 퀭한 아카이브는 내가 20여년 전 한국 영화사를 들여다보면서부터 내 주변을 배회하던 문제들이었다. 그중 중요한 한 작품을 찾는 데 작은 힘을 보태게 되어 원초경의 경전, 파편화된 거울의 복원에 도움이 된 듯해 휴하고 숨을 쉬어본다.
유령 정전이란 <아리랑> <저 하늘에도 슬픔이>처럼 사라져버려 전설, 구술, 기억으로 존재하는 영화다. 식민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필름 자체는 유실되었으나 이후 영화사가들과 평론가에 의해 민족주의 리얼리즘, 60년대 멜로드라마 같은 일정한 방식의 해석으로 “정전”으로 견고해질 때, 이것은 실제 존재하는 정전보다 더 강력하고 판타스틱한 통일성을 가질 수 있다. 조선, 한국의 영화사는 <아리랑> <임자 없는 나룻배> <만추> 등 일련의 유령 정전을 그 핵으로 품고 있다. 사라진 필름으로 텅 빈, 퀭한 아카이브는 식민지, 군사독재 근대화의 흔적이면서 또한 이런 역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다른 내셔널 영화사 기술들과 더불어 대안적 영화사 기술을 모색할 수 있는 프레임 혹은 원초경이 된다.
지젝에 따르면 팬텀, 이 대상-방해물(the object impediment)은 판타지적 일관성을 보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유령 대상(phantom object), 유령 <아리랑>, 그리고 유령 정전들은 사실 포스트 식민인 한국 사회의 판타지적 일관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 영화의 에피스테메(episteme)를 재검토하도록 만드는 공백, 파열과 단절을 드러내기도 한다. “팬텀 시네마”에 대한 방법론적 추론은 한국 영화연구의 추동력이 되어왔다. 특정한 종류의 정전 형성에 관한 문제, 가장 중요한 영화로 추정되는 <아리랑> 등이 유실되어 볼 수 없게 되었으나 다양한 형태의 한국 영화사 기술 속에서 정전의 위상을 점하고 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역시 팬텀, 유령의 귀환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지난 5년간 더할 수 없이 가까운 사람들을 다른 세상으로 보냈는데, 무엇인가를 복원, 되살리는 기적과 같은 일을 만나기도 했다. 죽음과 달리 실종, 그 사라짐에는 귀환의 약속이란 태그가 달려 있는 셈이다.
이후 한국 영상자료원의 노력으로 4월21일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상영되고, 김수용 감독과 스탭 그리고 해당 관계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장대한 원경 숏에는 자연과 도시가 동시에 담긴다. 그 속을 어떤 점처럼 달려가고 걷고 있는 이가 이윤복(김천만)이다. 이 영화는 초등학교 4학년인 이윤복의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소년의 시선과 문자로 기술된 세계를, 영화는 운명과 구원의 시학으로 격상시킨다. 소년 윤복은 궁핍하기 짝이 없어 구걸, 껌 장사, 구두닦이 등을 하지만 길가의 굶주린 소녀에게 돈을 건넨다. 어린 윤복은 마치 운명과 마주친 고결한 비극의 주인공 같다.
이것은 탁월한 성취다. 대중영화로서 아동 일기를 신파나 멜로보다는 오히려 비극쪽으로 밀고 가 완성시킨 것은 감독, 시나리오작가, 촬영감독의 역량이다. 예의 원경과 근경은 대담하게 편집되어 윤복과 세 남매를 짓누르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가난을 운명처럼 직조한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잘된 작품이다. 자연 풍경과 도시경관, 선과 악을 행하는 위인들, 운명과 의지가 촘촘히 모자이크되어 있다. 동요 <따오기>가 주제가로 흐르는데 , 통절하면서도 절제가 있다. 엔딩이 결정적이다. 유사 해피엔딩 이후 인물들은 다시 운명과 같은 자연 속에 그림자들로 걸어간다.
대만 영상자료원에서 돌아온 이 영화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 중 하나는, 오시마 나기사의 <윤복이의 일기>와 더불어 1960년대 한국영화의 동아시아 상영과 제작 네트워크다. 즉 한국, 일본, 대만을 잇는 영화 중 하나가 <저 하늘에도 슬픔이>이다. <추상촌초심>이라는 시적인 제목과 중국어 자막이 달린 프린트의 귀환은 우리에게 이 역사를 들여다보라고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