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식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한 아이가 있다. 벨기에로 입양돼 간 그는 양부모와 형제자매의 따뜻한 손길을 받으며 자랐지만 결국 자신은 이방인이란 생각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그런 자각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모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깊어지면서 이런저런 말썽도 많이 피웠고, 한번은 아예 집을 나가 살다가 몸에 병이 나 다시 양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대면하고자 한다. <피부색깔=꿀색>은 수십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가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자료를 바탕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다.
해외입양아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 혹은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한 묘사력이다. 애니메이터 융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자신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되돌아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데, 그렇게 드러난 그의 마음속 풍경 중에는 누구든 스스로 인정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더러 있다. 다른 한국인 입양아들을 싫어했던 사실, 동양인이 돼야 한다면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사실, 벨기에인 여동생에게 이성적 호기심을 느꼈던 사실 등을 그의 목소리와 그림체는 그저 나직하고 담담하게 옮겨낸다. “마음에 안 드는 건 다 지워버릴 수 있어서” 그림을 “피난처”로 삼았다는 그는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다 그려내고 다 껴안으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그저 피부색깔이 꿀색인 사람’이란 그의 결론에도 수긍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