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일부와도 같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습니다.” 탐(자비에 돌란)은 친구 기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욤의 가족이 살고 있는 농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기욤의 애인이기도 했던 탐은 마음껏 슬퍼할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욤의 어머니(리즈 로이)는 아들에게 다른 애인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기욤의 형인 프랑시스(피에르-이브 카디날)는 이상할 정도로 탐에게 적대적이다. 동시에 이들은 탐이 농장에 계속 머물기를 바라고, 결국 탐은 이 가족의 기묘한 분위기 속으로 조금씩 침잠해 들어간다.
최근 <로렌스 애니웨이> 등의 작품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선보인 자비에 돌란이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만든 <탐엣더팜>은 긴장을 놓지 않는 이야기와 이야기에 녹아들기를 거부하는 이미지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먼저 주목할 것은 배경 설명 없이 던지는 대사와 갑자기 벌어지는 사건들로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법이다. 영화는 ‘탐이 애인의 장례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만 제시한 채 그 뒤 벌어지는 일들을 관객이 추측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프랑시스가 왜 이렇게 탐을 미워하는지, 기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탐은 왜 이 농장에 머무르는지 알 수 없다. 이때 남는 건 뚜렷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모호한 감정의 흐름이며, 관객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보다는 농장을 감싼 무거운 공기를 탐과 함께 호흡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 정서를 기꺼이 받아들일지는 각자가 선택할 문제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화법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조율해가는 자비에 돌란의 연출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애매모호한 이야기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의미화에 저항하는 단편적인 이미지와 짧은 말들이다. 이를테면 탐이 환상으로 목격하는 어떤 남자의 기괴한 얼굴이나 송아지의 시체, ‘실제’를 논하는 탐의 대사와 어떤 끔찍한 사건에 대한 목격담들은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와 별개로 불쑥 출현하며 깊은 파장을 남긴다. 그 강렬한 인상이 이야기의 여백 사이를 파고들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는다. 그리고 <탐엣더팜>은 이런 장치를 통해 어떤 특정한 감정의 정체를 제시하기보다는 낯선 환경에 놓인 탐의 혼란스러운 내면 자체를 그리려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혼란에 대한 어떤 답도 주지 않는 것은 불친절한 인상을 주지만 동시에 쉬운 답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자비에 돌란의 고집으로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