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이효)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 보이는 소녀다. 보기에 따라 고등학생으로도, 대학생으로도 보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기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미조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이후 입양됐으나 입양부모에게 성폭행을 당한 아픈 과거를 지녔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태에 다다른 미조는 자신의 친부를 찾아가 그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미조의 친부 우상(윤동환)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냉혈한이다. 퇴직 경찰인 우상은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미조는 그런 우상에게 자신이 입은 상처를 되돌려줄 수 있을까.
2000년에 등장한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라는 긴 제목의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감독 남기웅은 이후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를 만들며 B급 하드코어 판타지 장르에 있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바 있다. <미조>는 불쌍한 소녀 대 나쁜 어른이라는 이분적인 구도를 바탕으로 한 복수극이라는 그의 초기작 설정을 그대로 따른다. 그러나 그 표현법에 있어서는 판타지에서 리얼리티로의 변화가 분명하게 감지된다. <미조>에서 감독은 관객에게 판타지적인 해소감을 안기는 대신,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때문에 실제 폭력의 강도는 전작에 비해 약해졌지만 체감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그렇게 많은 폭력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까지 인물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폭력이 자행되는 동안, 관객은 영화 속에 난무한 폭력에 점차 무감각해질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