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똑같은 외모의 두 남자 <에너미>
2014-05-28
글 : 송경원

역사학 교수 아담(제이크 질렌홀)의 일상은 평화롭지만 건조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담은 동료가 추천해준 영화에서 자신과 똑같은 외모의 배우 앤서니를 발견한다.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앤서니를 찾아나서던 아담은 결국 앤서니와 직접 대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둘의 첫 만남 이후 도리어 앤서니가 아담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담의 여자친구에게 흥미를 느낀 앤서니가 아담에게 서로의 신분을 바꿔볼 것을 제안하고 아담이 이를 받아들이며 상황은 점점 서로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The Double)를 영화화한 <에너미>는 <그을린 사랑>(2010)으로 주목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 <프리즈너스>(2013)에서 함께한 제이크 질렌홀이 아담과 앤서니, 1인2역을 소화하며 다시 한번 감독의 욕망을 대변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의중을 알고싶다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더블’이 아닌 ‘에너미’인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소설에서는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유머 아래에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나약함을 파고든 반면 드니 빌뇌브 감독은 억눌린 욕망이 구체화되는 과정에 더욱 매혹을 느낀 듯하다. 기본적으로는 똑같은 외모의 두 남자가 각자의 삶을 침범하며 겪게 되는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고 있지만 그 과정은 두려움보다는 매혹의 감정을 닮았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은 불안이라기보다는 금기시된 행동을 저지를 때 오는 이율배반의 쾌감처럼 보인다.

<에너미>는 욕망과 통제의 긴장관계에 관한 영화다. 아담이 강박에 가깝게 되뇌며 거부했던 지배 이데올로기, 엔터테인먼트로 대변되는 쾌락은 앤서니의 육체를 빌려 되살아난다. 배우로 설정된 앤서니의 존재 자체가 아담의 또 다른 자아 혹은 욕망인 셈이다. 오프닝 클럽에서 나체의 여성(욕망)이 거미(금기와 공포)를 밟아버리는 장면처럼 영화는 모호한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이를 비교적 선명하게 상징화시킨다. 다소 도식적인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충분하다. 앤서니의 욕망은 곧 아담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앤서니가 아담의 통제를 벗어난 순간 이는 두려움과 혼란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를 마냥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욕망이 주는 쾌감과 공포, 두 감정의 본질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긴장감의 양가적 속성을 예민하게 포착해낸 드니 빌뇌브 감독의 해석이 돋보인다. 전작 <프리즈너스>와는 또 다른 결의 감각적인 심리 스릴러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