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힘들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시가미 타케토(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말과 함께 영화는 그가 직접 겪은 기담 속으로 들어간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그는 결혼 1주년을 맞은 행복한 새신랑이다. 하지만 기념일 당일, 아내의 생사를 확인도 못한 채 이상한 사람들에게 쫓기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기억이 조작된 것임을 깨달으면서 정체성 혼란에까지 빠진다. 그런 그를 얼떨결에 돕게 되는 이가 취재차 일본에 와 있던 열혈 기자 강지원(김효진)이다. 그녀의 도움을 얻어 이시가미는 자신이 지난 1년간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된 이유를 파헤치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기억도 되찾는다.
방송작가 출신 소설가 쓰카사키 시로의 <게놈 해저드>를 옮긴 영화답게 국면을 전화해나가는 호흡이 두드러진다. 진실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단서와 인물들이 복잡다단하게 깔려 있기 때문에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도 없지 않다. 하지만 두 가지가 이 미스터리영화의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하나는 초반의 암시가 과하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숨겨진 능력, 정체불명 조직의 추격, 유전자 실험에 관한 암시는 ‘본’ 시리즈가 연상될 정도로 거대한 음모론의 냄새를 풍기지만, 창대한 시작에 비해 밝혀지는 결말은 미약한 편이다. 두 번째는 한/일 합작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삽입된 설정들이다. 주인공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 한국 여기자의 비범한 호기심과 의협심, 미국 제약회사의 한국 관계자 캐릭터 등 작위적인 요인들이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린다. 가설 설정, 실험 설계, 결론 도출 모두 좀더 논리적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