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멜로와 스릴러의 접경지대 <차가운 장미>
2014-05-28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프랑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필립 클로델의 신작 <차가운 장미>의 원제는 ‘겨울이 오기 전에’다. 장미는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촉매제이고, 겨울은 의미가 열려 있는 주제어다. 의문의 장미가 배달되면서 한 가정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는 <차가운 장미>는 명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모호함, 애매함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개인과 가정에 내재된 위선은 두터운 켜를 이루고 있으며 종종 다른 얼굴로 위장한다. 실력과 인품을 갖춘 신경외과의 폴(다니엘 오테유)은 우아하고 섬세한 아내 루시(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와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저택에서 평화롭게 와인을 마시는 부부의 모습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서 불안하다. 커다란 통유리로 된 집은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 하며 그 속에 있는 부부 사이도 어딘지 건조하게 느껴진다.

사건은 병원과 집으로 장미꽃 다발이 배달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붉디붉은 장미를 진한 초록색 포장지로 싼 꽃다발들이다.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수로운 일로 여기지 않던 부부는 거듭되는 꽃 배달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이즈음 폴은 카페에서 일하는 여대생 루(라일라 벡티)를 알게 된다. 폴은 지나치게 호감을 드러내며 접근하는 루를 피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진다. 멜로와 스릴러의 접경지대에 있는 <차가운 장미>는 가정에 은폐되어 있는 사실 혹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역설하는 영화다. 그리고 작정하고 파헤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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