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안젤리나 졸리의 완벽한 싱크로율 <말레피센트>
2014-06-04
글 : 윤혜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꾼 순수한 요정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는 인간 스테판(샬토 코플리)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권력을 탐한 스테판은 말레피센트를 희생시켜 왕관을 차지하고 그 일로 말레피센트는 인간을 미워하게 된다. 사나워진 그녀의 곁에 머무는 유일한 친구는 수족 같은 까마귀 디아발(샘 라일리)뿐이다. 그사이 스테판 왕은 인간 여자와 혼인해 오로라(엘르 패닝)를 낳는다. 말레피센트는 스테판 왕에 대한 복수로 오로라에게 저주를 거는데 예기치 않게도 그 저주로 인해 그녀는 오로라와 더 깊은 연을 맺게 된다.

감독 로버트 스트롬버그는 <아바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술감독이었고,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의 시각효과 디자인을 책임졌던 이다. 분장을 맡은 릭 베이커는 <스타워즈> <혹성탈출> <맨 인 블랙>의 특수분장 마스터다. 할리우드 대표 시각효과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2억달러의 거대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말레피센트>의 볼거리는 흠잡을 데가 없다. 요정의 숲 무어스와 무어스에 사는 다양한 크리처들도 정교하고 아름답게 창조됐다. 디즈니 캐릭터로 변신한 배우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주역인 안젤리나 졸리는 말레피센트가 실제로 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완벽하다. 조연배우들이 펼치는 능청스러운 연기도 애니메이션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실사영화만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말레피센트와 오로라의 관계에서 실제로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졸리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해 더욱 의미심장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나무가 아니라 숲이다. 뛰어난 시각효과와 배우들이 쓸데없이 소모된 것처럼 보일 만큼 전체적인 컨셉이 애매하다. 아이들이 보기엔 과하고, 어른들이 보기엔 유치하다. 말레피센트와 디아발의 묘한 관계라든지, 스테판 왕이 말레피센트에게 몹쓸 짓을 하고 난 뒤 내적 갈등을 겪는 장면 등은 더 나아갈 수 있었으나 (또는 더 나아갔다면 좋았겠으나) ‘디즈니의 아동용 영화’로 만들기 위해 불편하게 멈춰 선 것처럼 보인다. 오로라 공주와 스테판 왕의 캐릭터 역시 지나치게 축소돼 아쉽다. 이와 반대로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수긍이 되었겠지만 실사영화라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도 상당수다. 날개를 잘린 말레피센트가 처참하게 울부짖는 모습이나 화난 스테판 왕이 요정을 때리는 장면 등이 특히 그러하다. 디즈니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나름의 변화를 모색하려 한 듯하나 그 사이에서 <말레피센트>는 어정쩡하게 길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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