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텅 빈 성당 안에서 벌어지는 쓸쓸한 장례식들을 순례한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자의 죽음에 오직 한 남자만 동참하고 있다. 구청 고객관리과 22년차 공무원 존 메이(에디 마산)의 삶은 영화 제목처럼 변화 없는 정물(Still Life)과도 같다. 고독사한 고인의 유품을 조사하여 아무도 듣지 않을 정성스러운 추도사를 쓴다. 좁은 사무실에선 단정하게 서류를 정리하고 고인의 사진을 모아 그들을 기억한다. 퇴근 뒤엔 참치캔에 식빵 한쪽이 전부인 일인용 식탁 앞에 앉는다. 그런데 매일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던 그의 미니멀한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난다. 자신의 방 맞은편 아파트에 살던 노인 빌리가 고독사한 채 발견된 것이다. 자신도 모르던 이웃의 죽음에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존은 효율과 비용을 강조하는 시장에게 해고통보까지 받는다. 결국 최후의 공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는 난생처음 관할구역을 벗어나 빌리의 연고자를 찾아 생의 단서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스틸 라이프>는 관객을 압도적 고독감에 감염시키는 영화다. 영화는 고독사를 처리하는 공무원의 일상을 중심으로 하여 죽음, 기억, 해원의 문제를 다룬다. 관료제적 냉정, 현대적 기능성을 대변하는 듯한 음산한 영국 주택가와 사무실/아파트의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존의 공허하고 쓸쓸한 내면 풍경과도 같다. 식탁과 책상에 놓인 사과, 생선, 문방구 등은 분명 현대적 정물화의 오브제로서 의도된 것들이리라.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으며 죽음의 순간에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듯, 존 메이의 공무는 엄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심으로 수행된다.
감독 우베르토 파졸리니는 <풀 몬티>나 <벨아미>의 제작자로 유명하지만 <마찬>을 필두로 하여 시나리오와 연출도 겸하고 있다. 영미 독립영화계에서 연기력을 입증받아왔으며, <해피 고 럭키>에서 인상을 남긴 에디 마산의 격조 있는 연기도 훌륭하다. 삭막한 관계성과 고독한 일상을 압축해낸 절제된 연기와 단정한 시각 스타일에 미니멀한 음악이 얹히니 이상하게도 먹먹한 비애감이 생겨난다. 최소한의 감정 누출도 허용치 않으려는 듯 영화는 정결하고도 심플하게 진행된다. 매너리즘적 일상을 특유의 무드로 삼아 쓸모없이 살다 잊혀진 자들의 생애를 인간적 위엄으로 감싸안는다. 영화가 끝내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 될 한 죽음에 대한 최후의 애도에 다다를 때,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고독이 아니라 자기 안의 고독과 스산하게 마주보고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