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x cross]
[trans x cross] 빛나고 꽃피는 그곳으로
2014-06-16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소년이 온다> 낸 소설가 한강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한강은 시 <피 흐르는 눈3>의 첫 소절에 이렇게 썼다. 허락된다면, 이라는 가정법은 무의미하다. 허락되지 않더라도 한강은 고통에 대해 말할 테니까.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에 이은 한강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역시 상처입고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1980년 5월18일의 광주로 걸어들어간다. 그곳에서 계엄군에 맞서 싸운 15살 소년 동호를, 군홧발에 짓밟힌 영혼을,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난다. <소년이 온다>는 “인간을 껴안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한 문장, 한 문장 깊게 배어 있는 소설이다. 아직 <소년이 온다>와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작가는 자분자분한 말투로 때론 힘겹게, 때론 조심스럽게 ‘그날’을 이야기했다.

-또 한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기분이 어떤가.
=책을 내는 일이 내겐 책과 헤어지는 일이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헤어지는 과정 중 하나이고. 그러다 한두달 지나면 이제 다음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드는데, 이번 소설은 헤어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책에서 빠져나와도 되는 건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누구에게 죄스럽다는 건가.
=쓰는 동안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소설을 끝냈으니 나로선 더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안고서 계속 살아간다. 그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다른 장편에 비해 탈고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람이 분다, 가라>를 4년 반 동안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다. <소년이 온다>는 1년 반 걸렸다. 빨리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썼던 작품이었다. 2012년 12월부터 3개월간 자료를 모아 읽고 초고를 잡았는데, 그때 지금의 윤곽이 나와서 많이 흔들리지 않고 쭉 작업할 수 있었다. 2013년 10월까지 초고를 끝냈고,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했다. 그 뒤 5장 ‘밤의 눈동자’를 수정하느라 시간이 좀 늘어지긴 했다.

-열살 때까지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다 1980년 1월 서울로 이사를 갔고, 불과 4개월 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 5월에 내가 광주에 있었더라면’ 하는 가정을 수도 없이 했을 것 같다.
=아마 인생이 통째로 달라졌겠지. 너무도 짧은 시간의 차이로 그 사건을 피했다는 것, 그 상황이 주는 죄의식이 어린 시절 집안에 항상 깔려 있었다. 이미 초등학교 5학년 때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첩도 봤다. 80년대 초반 나라 전체가 그랬지만, 나의 십대에도 캄캄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 다쳤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성장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살이었다.”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의 첫 문장이다. 열살의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었던 지점은 어디까지였나. 또한 12살에 광주 사진첩을 봤을 때의 충격은 이후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나.
=당시엔 너무 어렸으니까,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이해했다기보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도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계 자체에 대해 공포를 느꼈고, 인간이 아주 잔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그 인간의 일원이라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진첩을 처음 봤을 땐 그것이 내게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란 생각조차 못했다. 사진들이 그냥 내 몸속에 들어와 박혀버린 것 같다.

-일찍이 알게 된 80년 5월의 진실이 언젠가는 자신이 마주해서 써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나.
=어릴 때나 20대 때나 30대 때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많은 선배 작가들이 이미 훌륭하게 작품으로 형상화했으니까. 특히 임철우 선생님이 <봄날>을 쓴 뒤엔, 더더욱 내가 소설로 쓰게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난 늘 내면적인 글을 써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면에서 그 계기가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의문과 의심과 회의를 품어왔다. 그 의문과 의심을 뚫고 나가고 싶었다. 그게 소설을 쓰는 동력이 되기도 했고. 그러다 <희랍어 시간>을 쓰면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어가는 여자가 서로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쓰면서, 이제는 내가 인생을 껴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은 내가 쓴 가장 따뜻한 장면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간을 확 껴안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안 되더라.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1980년 5월이, 내가 품었던 근원적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외적인 계기는, 만약 현실이 녹록했다면 이 얘기를 안 썼을 것 같다. 용산참사도 그렇고, 아직도 우리가 광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적인 계기와 외적인 계기가 만나서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소년이 온다>에서 인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묻는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한가. 동시에 어떻게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하는가.’ 소설을 쓰며 질문에 대한 답은 구했는지 궁금하다.
=실제로는 그런 책이 존재하지 않는데 영국 작가가 쓴 번역서의 한 대목이라고 밝히며 소설에 쓴 부분이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이 굉장히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깨지기 쉽기 때문에 깨지지 않도록 존엄을 지켜야 한다고. 인간의 존엄함을 얘기하는 데까지 이 소설을 밀고 나가자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면서 나 역시도 많이 흔들렸다. 인간의 존엄함과 잔혹성 사이에서. 그러다 에필로그에 썼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종교는 없는데, 망월동 묘지에서 기도를 많이 했다. 정말 그분들이, 그 넋들이 나를 이끌고 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빛이 비치는 쪽으로 가려고 나름대로 온 힘을 다했다.

-몸과 마음의 고통이 이만큼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의지, 그 의지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5장의 마지막 문장을 ‘죽지 말아요’라고 썼다. 그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5.18 생존자들의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 무려 11%다. 그분들은 위태롭게 자신과 싸우면서 살아간다. 5장의 화자인 선주 역시 5.18 생존자다. 그녀의 입을 통해 ‘죽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시로 먼저 등단을 해서인지, 당신의 소설을 읽다보면 간혹 시를 읽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소설 쓰기와 시 쓰기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소설을 쓸 때 시적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이탤릭체로 쓰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감정의 밀도가 어느정도 차오르면 이탤릭체로 쓰게 되는 것 같다.

-지난해엔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도 냈다.
=시로 등단하고 두달 만에 소설로 등단하는 바람에 변변히 시 청탁 한번 못 받아봤다. (웃음) 그런데 소설을 쓰려면 아무래도 노동을 해야 하니까, 그쪽에 계속 에너지를 쏟으며 살았던 것 같다. 시는 쓰려고 쓰는 게 아니라 이사를 한다든지, 몸이 아프다든지, 인생이 좀 흔들리는 것 같다든지 할 때 써졌다. 안정된 해에는 1∼2편, 인생이 막 흔들릴 땐 7~8편씩 시를 썼다. 그렇게 해서 모인 시가 100편이 넘었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란 책도 있지만, 이렇게 모은 시들이 내겐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같은 거였다. 그러다 친한 선배이기도 한 이원 시인에게 “집에 시가 100편 있는데 아마 다 버리게 될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걸 왜 버리냐, 아깝지 않냐, 시집을 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 그렇게 60편을 추려서 시집을 냈다.

-소설보다는 시가 좀더 자기만족적인 작업이겠다.
=발표할 의지도 없고,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쓴 글이니까.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구상 중인가.
=그저께부터 생각한 단편이 하나 있다. 6월에는 단편을 쓸 계획이고, 장편은 가을쯤에나 쓰게 될 것 같다. 아직은 <소년이 온다>에서 빨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강의하고, 글 쓰는 것 이외에 시간과 애정을 쏟는 일이 있다면.
=그 두 가지 일도 내겐 벅차다. 글을 쓰다가 중간에 끊고 강의하러 갈 때가 제일 마음 아프달까. (웃음) 내 비밀한 소망은 글만 쓰고 사는 거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

“한때는 과작의 작가였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웃음)” 최근 2~3년 사이 한강은 공백기간이 채 1년도 안 되는 부지런한 작가가 되었다. 지난해 11월엔 한강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가 출간됐다.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가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등단한 한강이 20여년 동안 틈틈이 써온 시 60편이 이 시집에 담겼다. 2012년 10월엔 표제작 <노랑무늬영원>을 비롯해 <회복하는 인간> <훈자> <에우로파> <밝아지기 전에> <왼손> <파란 돌> 이상 7편의 단편이 실린 세 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이 출간됐다. 2011년 11월엔 한강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이 나왔다. <희랍어 시간>은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사설 아카데미 희랍어 강의에서 수강생과 강사로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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