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양로원에서 탈출한 할아버지의 여정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14-06-18
글 : 이현경 (영화평론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양로원에서 탈출한 100살 할아버지의 여정을 담은 예측불허 로드무비 코미디다. 알란 칼슨(로베르트 구스타프손)은 100살 생일날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다. 양로원 직원들은 생일 케이크에 어렵사리 100개나 되는 양초를 꽂고 알란의 방문을 연다. 하지만 그는 창문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두개의 이야기 축을 갖고 있다. 하나는 100살 노인 알란의 여행담으로 그가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고 여러 사람들과 조우하며 기이하고 유쾌한 모험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알란의 내레이션으로 설명되는 그의 과거사로 20세기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이 등장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개의 서사는 서로 맞물리며 각자의 스토리를 뚝심 있게 펼쳐나간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길을 떠난 알란은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남자의 여행 가방을 떠맡게 된다. 돈다발로 가득 찬 가방 때문에 조폭들이 그의 행적을 좇지만 정작 알란은 돈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이 가방은 히치콕 영화의 맥거핀처럼 알란을 둘러싼 추격전을 위해 마련된 플롯 장치일 뿐이다. “물건이나 돈에 주인이 따로 없다”라는 신념을 가진 알란은 돈에 욕심이 없지만 가방을 돌려줘야 한다는 의지도 없다. 알란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가 해준 “생각을 많이 해봐야 답도 없고, 닥칠 일은 닥치고, 인생은 살아가게 되어 있다”라는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인물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부터 찾자.” 이런 상식적인 말도 100년 인간사를 경험한 알란이 들려줄 때는 묵직한 격언으로 들린다.

알란의 한평생은 유럽과 미국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는 스페인 내전의 장본인 프랑코, 핵무기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연구원 로버트 오펜하이머,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냉전시기 미국 대통령 레이건 등 역사적 인물이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알란은 우연히 그들과 조우하고 역사적인 사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 68혁명,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역사적 순간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일종의 대체역사물이다. 영화 속 알란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본능대로, 가치관대로 행동한 것으로 그려진다. 코미디 특유의 거리감으로 바라본 현대사는 서글프게도 한편의 소극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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