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매니악 볼륨1>에서 샤이아 러버프는 조(스테이시 마틴)의 유일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달콤하고 불편함 감정보다는 ‘욕정’이라는 동물적 감각에 몸을 내맡긴 영화에서, 그가 지닌 자부심(?)이랄까. 어린 시절 자신의 성기에서 특별한 느낌을 발견한 조는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아니 그냥 쉽게 말해 ‘조루’라고 하면 더 이해가 빠를 제롬(샤이아 러버프)에게 처녀성을 줬다. “내 처녀성을 너한테 주면 안될까?” “안 될 것 없지.” 첫 만남에서 제롬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암시는, 바로 조가 손동작 한번으로 그의 고장난 오토바이를 고쳐주는 장면이다. 마치 ‘이렇게 좀 했어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무튼 지금의 샤이아 러버프를 있게 한 <트랜스포머>(2007)에서 샘 윗위키(샤이아 러버프)와 자동차 정비기술도 뛰어난 섹시녀 미카엘라(메간 폭스)의 첫만남을 패러디하는 것 같은 그 장면은 ‘이제 당신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샤이아 러버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흥미로운 선언으로 느껴진다.
<님포매니악 볼륨1>은 조의 ‘밝힘증’과 별개로 어처구니없게 웃기다. 신스틸러로서 조로 인해 남편을 잃게 생긴 세 아이의 엄마 미세스 H(우마 서먼)의 활약상도 돋보이지만, 본의 아니게 그 웃음의 진짜 주인공은 영화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샤이아 러버프로 인한 것이다. 조의 첫 남자로 등장한 이후 세월이 흘러 조가 비서로 첫 출근한 회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는 직장상사로 등장하거니와, 또다른 비서와 눈이 맞아 결혼했던 그가 마지막에 이르러 다시 조 앞에 나타난다. 등장할 때마다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긴 하지만 솔직히 말이 안 된다. 거의 조의 판타지로 여겨진다. 다소 황당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마치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2001)에서 여관 주인, 자해공갈단 두목, 대학교 수위 등 1인5역으로 등장하며 일명 ‘독수리 오형제’라 불렸던 고 김일우를 연상시킬 정도다. 오죽하면 나이 든 조(샬롯 갱스부르)의 그런 회상을 가만히 듣던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이 ‘너무 작위적인 이야기’라며 발끈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다.
그처럼 샤이아 러버프는 <님포매니악 볼륨2>로 향하기까지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원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팬이었던 그는 에이전트로부터 출연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그 어떤 역할이라도 소화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제작진의 첫 번째 요청사항은 그의 성기 사진을 보내달라는 것이었고,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싫었던 그는 잘 나온 놈으로 골라 20분 만에 사진을 전송했다. 차도 싫고 마이클 베이도 싫어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떠난 그로서는 라스 폰 트리에가 자신을 ‘리부트’해줄 예술가라 믿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금껏 함께 작업해온 감독에게 딱히 좋은 소리를 늘어놓은 적 없던 그를 떠올려보면 무척 큰 변화다. “절대적으로 감독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들은 내가 꿈꾸던 최고의 작품들보다 언제나 더 좋았기 때문이다.”
샤이아 러버프는 지금 중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 할리우드에서 ‘시리즈에 박제된’ 스타들의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크 해밀, <슈퍼맨> 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리브,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마이클 J. 폭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엘리야 우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대니얼 래드클리프 등 그 자신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시리즈의 굴레에 갇혀버린 배우들의 역사 말이다. 지난 2007년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채 스무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극 <에쿠스>에서 선보인 누드 연기도 그런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는 “해리 포터에서 벗어나 자신에 대한 다른 평가를 접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어쩌면 <님포매니악 볼륨1>에서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며 기이한 사랑의 드라마에 몸을 내던진 샤이아 러버프의 마음도 그런 것이지 싶다. 제롬에게서는 이전까지의 자신과 단절하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제롬은 조와 달리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과는 거리가 멀며 매우 불안정하고 허영심이 많은 남자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작은, 아주 속이 좁고 좀스러운 남자다. (웃음) 사랑의 개념이 없는 사람이랄까.”
<님포매니악 볼륨1>에서 샤이아 러버프의 그런 이미지는 최근 현실에서 그가 보여준 기행(奇行)과 맞물려 오히려 존재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영화가 초청된 지난 베를린국제영화제에는 머리에 ‘나는 더이상 유명하지 않다’(I AM NOT FAMOUS ANYMORE)라고 쓴 봉투를 쓰고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물론 그는 과거 파파라치를 피한다며 머리에 봉투를 쓰고 외출한 적도 있다. 아마도 그 모습 그대로 캐릭터 상품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기자회견 중에는 “갈매기가 고깃배를 따라다니는 이유는 어부들이 정어리를 바다에 버릴 걸 알기 때문이다”라며 동문서답을 내뱉기도 했다. 이 말은 과거 자신에게 야유를 퍼붓던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크리스털 팰리스’ 관중을 향해 정통으로 이단 옆차기를 날렸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에릭 칸토나가 기자회견에서 한 얘기였다. 이는 그를 소재로 한 켄 로치의 다큐멘터리 <에릭을 찾아서>(2009)의 마지막 장면에 쓰이기도 한 에피소드다.
또한 은퇴 선언도 화제였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의 예술적 진실성에 대한 비판으로 공적인 생활에서 은퇴하기로 했다. 나를 지지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라는 글을 남기며 은퇴를 밝혔는데, 그것은 자신이 연출한 단편영화 <하워드 캔투어 닷컴>이 만화가 겸 그래픽 소설가인 대니얼 클로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근 ‘골덴 성애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패션 테러리스트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건 또 어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숙자에게 점심을 사주는 훈훈한 모습과 삼촌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과도한 이자를 매겨 법정다툼까지 가는 양극단의 ‘검소한’ 모습에서 또다시 아찔해진다. 명문 예일대에 합격하고도 진학하지 않은 과거까지 떠올려보면, 진정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면, 샤이아 러버프는 적어도 카메라 앞에서는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트랜스포머>로 ‘뜬’ 이후에도 <디스터비아>(2007),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 <이글 아이>(2008),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2012) 등을 통해 한번도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준 적 없다. 히치콕의 영향을 받은 <디스터비아>와 <이글 아이>에서는 곤경에 처한 남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전형적인 원톱 주인공을 연기했고,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는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의 아들로 나와 가죽 재킷을 걸친 채 오토바이를 모는 전형적인 50년대 스타일의 반항아로 등장했다. <와일드 원>(1953)의 말론 브랜도나 <이유 없는 반항>(1955)의 제임스 딘을 보며 연구했던 그 스타일은 <님포매니악 볼륨1>에서 그의 첫 등장과도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놀랍게도 그가 매번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의 아찔한 승부를 즐겨왔다는 점이다.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에서는 톰 하디와 가이 피어스,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에서는 마이클 더글러스, <컴퍼니 유 킵>에서는 로버트 레드퍼드, 그리고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찰리 컨트리맨>(2013)에서는 급기야 매즈 미켈슨에 이르기까지 그는 끝없이 자신을 시험해왔다. 하반기 개봉예정인 <퓨리>에서는 드디어 브래드 피트와 만난다. 어쩌면 그런 승부 근성이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magic hour
러버프의 성인식
“앞으로는 나를 무시하지 마!”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에서 샤이아 러버프는 철없는 막내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포레스트(톰 하디)를 중심으로 ‘밀주’를 팔아 유명해진 본두란가 삼형제는, 거액의 상납금을 요구하는 신임 특별수사관 찰리(가이 피어스)와 맞선다. 당시 이미지 변신을 꿈꾸고 있던 그에게, 자신을 막내라며 어린애 취급하는 형들을 향해 마치 갱스터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내지르는’ 막내 ‘잭 본두란’ 역할은 절실했다. 형들 몰래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치르고 온 그는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당당했다. 물론 ‘볼륨2’까지 봐야 명쾌해지겠지만, <님포매니악 볼륨1>의 제롬을 두고 “뭔가 더럽고 악랄하고 불경스러운 남자”라고 말하는 그에게 마술 같은 변화의 시작은 아마도 갱스터와 결탁한 형제들의 이야기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이었을 것이다. 샤이아 러버프의 성인식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