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미국 드라마 의 40대 버전”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2014-06-25
글 : 이주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L워드>의 40대 버전”이라 했다. 미국 드라마 <L워드>의 제작, 연출, 각본에 참여한 로즈 트로체가 역시나 이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미국 LA에 사는 레즈비언들의 이야기인 <L워드>보다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의 내밀한 욕망을 좀더 우아하게 풀어놓는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애비(로빈 웨이거트)는 이혼전문 변호사인 케이트(줄리 페인 로렌스)와 두 아이를 키우며 산다. 아들이 던진 공에 맞아 머리를 크게 다친 애비는 피 흘리는 자신을 두고 일하러 가는 케이트에게 섭섭함을 느낀다. 섭섭함은 이내 허전함과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고, 요리와 빨래,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혼자서 책임지던 애비는 주부로서가 아니라 욕망에 충실한 여성으로 살기로 한다. 맨해튼의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하던 애비는 함께 일하는 수리공을 통해 섹스 파트너들을 선별해 만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곧 애비의 비밀스런 사업이 된다.

“여자 나이 마흔이 되면 얼굴과 엉덩이 둘 중 하나는 책임져야 해.” 영화 시작과 함께 들려오는 첫 대사다. 곧이어 다른 여자가 그 말을 받는다. “마흔 넘으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놓은 여성들이 헬스장에서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꽤나 진지하게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다.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얼굴’과 ‘엉덩이’보다 ‘여자’와 ‘마흔’이란 단어에 더 눈길을 주는 영화다(그렇다고 얼굴과 엉덩이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애비는 자신이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순간 자신의 욕망에 눈뜨게 된다. 애비에게 섹스는 쾌락의 도구도 아니고 공허함을 채워줄 마법도 아니다. 그저 몸과 몸이 포개질 때 마음과 마음도 포개질 수 있다고 영화는 얘기한다.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 자극적 소재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주인공이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그들이 특별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레즈비언 커플인 애비와 케이트의 공허와 고독이 깃든 삶은 여느 이성애자 커플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실제 동성 배우자와 결혼해 살고 있는 스테이시 패슨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녹여 이야기를 썼고, 판타지로 얼룩진 레즈비언영화가 아니라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레즈비언영화 한편을 완성했다. 물론 레즈비언이란 단어는 지워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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