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캠핑가서 <이국정원>을!
2014-06-25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제2회 무주산골영화제, 6월26일부터 닷새간
<리뎀션 송>

때로는 영화를 보는 장소나 환경이 영화에 대한 기억을 지배하기도 한다. 익히 알고 있던 영화를 낯선 장소에서 만날 때, 그것의 새로운 면모가 보이기도 하고 낯선 장소가 영화의 낯선 느낌을 오히려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도 만든다. 영화를 보는 장소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무주산골영화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제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6월26일(목)부터 30일(월)까지 5일간 전북 무주군 무주읍 등나무운동장, 무주예체문화관 등지에서 열린다. 개막작인 <이국정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17개국 51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경쟁부문인 창섹션이다. 1회 영화제에서 <수련>에 최고상인 뉴비전상을 안겼던 눈 밝은 영화제가 올해는 어떤 영화들을 발견 혹은 재발견하게 될까. 본선에 오른 작품은 총 9편이다. 이미 개봉했거나 개봉을 준비 중인 작품 사이로 <리뎀션 송>이 눈에 띈다. 이번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예술적 정체 상태에 빠진 시인 형석이 최고의 역작, ‘연쇄 살인범의 초상’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이야기다. 대사가 없는 대신 스크린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활자로 서사를 이어가는 형식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때문에 이 작품은 영화와 시 쓰기를 접목한 무언극으로도 보인다. 두편의 서로 다른 청춘 이야기 <새출발>과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도 눈여겨볼 만하다. 장우진 감독의 데뷔작 <새출발>은 전주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르바이트, 학과 폐지, 낙태 등 어두운 가운데 플래시를 켜고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청춘의 발걸음이 담담하게 새겨지는 작품이다. 개봉을 앞둔 김경묵 감독의 신작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결지로서 편의점이라는 장소를 다룬다. 같은 인물이 자리를 바꿔 등장하거나 편의점에 들어온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해 상황이 급변하는 일종의 소극이 반복된다. 이는 분초 단위로 인생이 바뀔 가능성이 농후한,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삶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좀더 다양한 영화들을 원한다면 국내외 신작을 소개하는 판섹션으로 눈을 돌려보자. 먼저 <아워 칠드런>과 <No>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워 칠드런>은 한 여성이 어떻게 미쳐가는가에 관한 기록이다. 영화는 집 안에 갇힌 여인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타이트한 구도 속에서 한 가정의 비극을 향해 서서히 다가선다. 이제는 성장해 네 아이의 엄마가 된 <로제타>의 배우 에밀리 드켄의 모습이 반갑다. <No>는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 몰락 직전의 상황을 그린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르네는 곧 있을 피노체트 대통령의 임기 연장에 대한 대국민 찬반투표를 앞두고 이를 반대하는 캠페인 영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영화는 당시의 푸티지 필름을 적극 활용하고, 현재의 영상 역시 당시의 영상과 톤을 맞추는 등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을 따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승리의 기록이기보다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 이후를 고민하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카자흐스탄영화 <하모니 레슨>이다. 10대 소년 아슬란이 친구들에게 폭력을 일삼는 볼라트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절제된 촬영과 연기에서 비롯된 미장센과 현실에 대한 환상의 개입을 제시하는 미적 표현력이 압도적이다. 이 작품과 함께 영화제에 동행한다면 더없이 좋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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