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내일의 모서리
2014-07-03
글 : 김혜리

브라질월드컵이 진행 중이다. 이토록 많은 인구가 열광하는데 왜 훌륭한 축구영화의 수는 야구의 그것을 크게 밑도는 걸까? 자명한 답이야 “미국에서 비인기 종목이라서”지만, 다른 핑계도 주워섬길 수 있다. 축구는 휴먼 드라마를 끼워넣을 틈새가 없는 운동의 연속이다. 위기와 해소를 선사하는 득실점도 적다. 공간의 분할 운용이 핵심인 스포츠다보니 근접숏의 위력에 의존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번에 메시, 로번 등의 신기(神技)를 구경하다 확인한 새삼스런 난점. 어떤 배우나 대역도 저런 초인간적 움직임을, 첨단 중계로 단련된 관객의 눈에 그럴싸하게 연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소림축구>의 노선이 현명했다.

6/6

에마 톰슨이 시나리오를 쓰고 리안 감독이 연출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개봉한 1996년 한 평자는 재치를 부려 “(코스튬 드라마로 일가를 이룬 영화사) 머천트 아이보리가 제작하지 않은 머천트 아이보리 영화”라고 그 영화를 소개했다. 더그 라이먼 감독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이를테면, 원작 비디오 게임이 없는 비디오 게임 영화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나 <맥스 페인>과 달리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게임의 서사가 아니라 서사구조를 가져다쓴다.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통해 전황 정보와 전투의 기술을 차곡차곡 축적해 플레이어로서 경쟁력을 키워간다. 리셋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이 영화의 히스테리컬한 편집 리듬은 흡사 모니터 화면에 ‘게임 오버. 다시 하겠습니까?’가 깜박일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컨티뉴’를 두드리는 게이머의 오기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영화이기에 종결이 불가피해지는 지점에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패러다임을 교체한다. 가동할 수 있는 마지막 플레이어를 활성하고 매뉴얼에 없는 변칙 전술을 고안해서는 최종 보스를 제거하러 나선다.

보통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시점의 한계로 인해 관객보다 사건에 관해 적은 양의 정보를 갖기 마련이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반대다. 빌 케이지는 영화의 일정 시점부터 관객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빌이 히드로 전진기지와 프랑스 해변의 전쟁터에서 보낸 기간이 1년인지 1세기인지 알지 못한 채, 그가 보낸 시간의 아주 작은 일부만 우리가 보고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인다.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게끔 하는 트릭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부르는 또 다른 착시 현상은, 패러독스로 얽힌 복잡한 시간여행 내러티브를 가졌다는 인상이다. 체감과 달리 한발 떨어져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서사는 남들 못지않게 스트레이트하다. 이 영화의 ‘2보 전진, 1보 후퇴’식 전개가 만들어놓은 ‘주름’을 다림질했다고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자. 그리고 숱한 액션영화에서 보아온 ‘멋모르는 신병이 특수부대에 파견된다’라는 출발점 A와 ‘그가 적을 무찌른다’라는 결승점 B를 잇는 스토리의 궤적을 대충 그어보자. 둘은 쉽게 포개진다. 히드로 기지에서 빌이 눈을 뜨는 순간으로 반복 회귀하는 영화의 움직임은, 악보로 치면 도돌이표라기보다 주음을 장식하는 꾸밈음이나 확장하는 화음에 가깝다. 주선율은 마이웨이, 제 갈 길을 간다. 달리 표현하자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시간여행은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을뿐더러 대세를 강화한다. 비판이 아니라 감탄이다.

6/7

영미권 평자들이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붙여준 별명 가운데 ‘그라운드혹 이병 구하기’가 눈길을 끈다. ‘구간 반복형’ 시간여행 영화의 명작인 <사랑의 블랙홀>(1993)의 원제(<Groundhog Day>)와 스필버그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퀀스에 관한 연상을 합한 작명이다.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블랙홀>과 액션 스릴러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중요한 차이는 주인공에게 고정불변한 목표와 목적의식이 있느냐에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한번 입력된 목적지는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리셋될 때마다 내비게이션이 신규 정보를 반영해 대안 경로를 모색할 따름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엣지 있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할리우드영화의 직계로 느껴진 까닭도, 현란한 타임라인 조작의 궁극적 용도가 영웅이 단일한 목표를 달성하고 자기의지로 운명을 빚어가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내무반 장면에는 병사들의 도박을 상관이 단속하는 일화가 (물론 반복해서) 나오는데, 운이 승부를 결정하는 게임에 대한 반감이 대사로 표현된다. 반면 주인공 빌은, 리셋 능력에 힘입어 끝없이 우연적 요소를 소거하며 자신의 설계대로 전투를 통제해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설정에서 파생되는 기묘한 잔인함이다. 외계인을 퇴치한다는 거대 목표만 성사시키면 모든 희생을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있기에, 이 영화는 그리고 관객인 우리는 도중에 발생하는 사상자를 개의치 않아도 좋다는 보장을 받는다. 극중에서 빌은 작전대로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분대원의 질문에 그냥 죽으라고 쿨하게 대꾸한다. <사랑의 블랙홀>에서는 빌 머레이가 그냥 잠들었다 깨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는 톰 크루즈가 죽어야 시간이 되돌려진다. 그러므로 전우 리타(에밀리 블런트)는 수틀리면 권총을 들어 빌을 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일정 시점이 지나면 죽음의 광경 앞에서 찰나의 상상된 통증조차 느끼지 않게 된다. 제작 중반까지 이 영화의 제목은, 원작과 동일한 <올 유 니드 이즈 킬>(죽어야 산다?)이었는데 훨씬 적확한 타이틀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죽음은 취소 가능하고 부상은 아프지 않으며 기억은 너무 많아 금세 덧씌워진다. 이 영화는, 은연중에 잔인하다.

6/8

내가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관람한 극장은 4DX 상영관이었다. 오래전 테마파크 내 극장에서 본 <백 투 더 퓨처>를 제외하면 평생 처음이었다. 비행장면에 이르자 좌석이 이리저리 기울었고, 군인들이 바다로 투하되면 얼굴로 물이 분사됐다. 영화의 루프 구조 덕분에 노하우를 축적한 건, 톰 크루즈만이 아니어서 해변 전투 도입부가 두 번째 반복될 때부터 관객은 일제히 몇초 전에 얼굴을 가렸다. 웃음을 자아내는 장관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내게 4DX는 자진해서 감수하는 영화적 체험의 반감(半減)이었다. 객석에 가해지는 특수효과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스크린과 스피커로 전력투구해야 할 시청각과 (상상된) 촉각을 훼방하고 분산시켰다. 간단한 예로 관객 전원이 3D 안경을 착용한 상황에서 물을 뿜으면 영화를 계속 보기 위해 안경을 닦아야 하고 그사이 몇초 동안 영화를 놓치는 일은 불가피하다. 아이디어는 이해할 수 있다. 영화가 표현하는 역동성에 관람 환경의 자극을 더해 쾌감을 배가한다는 구상일 터다. 그러나 우리가 물리 선생님한테 배운 바에 따르면, 두 파동은 보강간섭뿐만 아니라 상쇄간섭도 일으킨다. 파동의 마루와 마루, 골과 골이 일치하면 진폭과 강도가 커지지만 반대의 경우 더하고 빼서 제로가 되기도 한다는 원리였다. 게다가 영화가 우리에게 일으키는 감각의 고양은 꽤나 섬세하고 복합적인 파동이라서, 의자 흔들기나 물 뿌리기로 그 파장과 진폭을 일치시키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건 마치 내가 가수 이소라가 부르는 노래에 3도 화음을 넣겠다고 덤비는 만용과 진배없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중반 총격전 장면에서 기관총의 격발과 동시에 하얀 조명이 객석에 번쩍이는 순간 나는 모골이 송연했다. 모든 감독은 각자가 처한 조건 안에서 관객에게 최종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특수효과를 포함해-최선의 상태로 조율해 스크린으로 떠나보낸다.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극장 안의 빛과 소리가 모두 넓은 의미의 ‘공해’에 속하는 이유다. 유일한 예외는 영화와 하나가 된 관객의 탄성과 신음, 웃음과 울음, 자연스러운 몸의 꼼지락거림뿐이다. 그것들은 영화의 멋진 일부다. 나는 4DX 상영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감독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 의심하며 극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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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만년학생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 칼슨(로베르트 구스타프손)은 순전히 우연과 운으로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영향을 끼친 남자다. 한편, 알란의 여정에 합류하는 베니(데이비드 비베리, 사진 맨 왼쪽)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해당하는 캐릭터다. 알란이 20세기를 축지법으로 가로질러 왔다면, 베니는 평생 진로를 고민하느라 아무 데도 못 갔다. 이걸 공부하다보면 그게 궁금해지고 그걸 알고 나니 저게 흥미로워져서, 중년이 되도록 한우물을 못 팠다. 대신 베니는 식이요법에서 동물학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준전문가로서 친구들이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유용한 지식을 제공한다. 알란이 누가 뭐래도 시적인 단답으로 응수한다면, 베니는 인사치레 질문에도 너무 길고 깊게 대답한다. 이렇게 판이한 알란과 베니가 서로에게 매우 긴요한 여행 친구라는 점이, 이 유유한 영화의 핵심과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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