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on]
[flash on] “기존 퀴어영화에 대한 나름의 저항”
2014-07-03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원나잇 온리> 김조광수, 김태용 감독
김조광수, 김태용 감독(왼쪽부터).

한국 퀴어영화의 산증인 김조광수 감독과 그가 “눈여겨본” 재능 있는 신예 김태용 감독이 옴니버스 퀴어영화 <원나잇 온리>(2014)로 뭉쳤다. 게이들에게 술자리를 주선하고 그들을 등쳐먹으며 사는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단편 <밤벌레>(2012)는 김태용 감독의 첫 번째 퀴어영화다. 두 번째 단편인 김조광수 감독의 <하룻밤>(2013)은 이제 막 스무살이 되는 세 남자의 첫사랑의 아픔을 담았다. 두 감독은 퀴어영화라는 구분 짓기에 앞서 누구나 한번쯤 겪는 사랑의 아픈 순간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해왔다. 장대비가 시원스레 내리던 여름의 초입, 두 사람을 만나 멜로드라마 <원나잇 온리>에 대해 물었다.

-두 단편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생각을 했나.
=김조광수_김태용 감독이 스무살일 때부터 알고 지냈고 이 친구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2012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밤벌레>를 처음 봤는데 좋더라. 개봉을 해보려고 알아봤더니 신인감독이라 쉽지 않았다. 그때 극장 관계자들이 나보고 단편을 하나 만들어서 같이 묶으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고민을 하다가 이런 동력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싶어 시도했다. 내가 대표로 있는 청년필름의 계열사인 레인보우팩토리가 제작하는 첫 번째 퀴어영화다. 이걸 시작으로 퀴어영화를 만드는 신인감독들의 작품을 계속 지원해 개봉할 생각이다. 현재 <REC>(2011)의 소준문 감독을 포함한 세명의 감독이 옴니버스영화를 만들어 후반작업 중이다.

-각자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상한 건가.
=김조광수_2012년 진주 경상대학교에서 열린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2012) 관객과의 대화에서 만난 두 친구가 있었다. 자신들을 재수생이라고 밝힌 이들은 나보고 진주에 사는 재수생 게이들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더라. 지방 소도시다 보니 정체성이 드러날까봐 더욱 조심스럽다며, 여기서 자기들의 청춘이 썩어가고 있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데 듣다보니 흥미롭더라. 극중의 근호(유민규), 용우(조복래)는 모두 그 친구들 이름에서 가져왔다. 시나리오 쓸 때도 그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유부남을 만난 것이나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맡에 상대가 두고 간 돈이 있는 에피소드는 실제 내 경험담이다.

김태용_김조광수 감독님과 함께 <후회하지 않아>(2006)의 후속 격으로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때 감독님이 인터뷰이로 몇명을 소개해줬는데 그중 <밤벌레>의 훈(장유상)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형들 앞에서 재롱을 떠는 그 아이를 보는데 왠지 짠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 아이는 상처받지 않고 잘 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한테 여전히 사랑받고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상대에게 사랑받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나 보다. <밤벌레>는 그렇게 시작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남자인데 왜 여자를 사랑하지 못할까’와 같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 이미 끝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다음 단계,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게이, 레즈비언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져 있고 그들끼리도 서로를 물어뜯는다. 그런 의미에서 <밤벌레>는 기존 퀴어영화에 대한 나 나름의 저항으로 만들었다.

-대부분 신인배우들로 캐스팅했다. 연기 지도는 어떻게 했나.
=김조광수_노출이 있는 베드신은 리딩 때부터 배우들에게 콘티를 보여주며 액션을 알려줬다. 이성애자인 배우들에게 머릿속으로 여성을 생각하며 연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내 눈에, 스크린에 다 보인다.

김태용_연기자들보다 오히려 내가 더 겁을 먹었다. ‘배우들이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면 어쩌지’ 싶어서 내 선에서 많이 절제했다. 오히려 배우들이 아쉬워할 정도였다.

-사전 취재 겸 배우들과 성소수자들이 모여 있는 클럽에도 직접 갔나.
=김태용_취재보다는 그 상황에 나를 대입해보는 편이다. 내가 만약에 훈이라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저렇게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벌은 뭘까를 생각해봤다.

김조광수_나와 영화 작업을 한 사람이 촬영 전후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식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는 강박이 있다. 스탭, 배우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게이들 문화도 알려주고 직접 성소수자들을 만나보게도 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 <사랑은 100℃>(2010)도 그렇듯 게이 청소년들의 사랑을 꾸준히 다뤘다.
=김조광수_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심적으로 기대고 있는 LGBT 청소년들을 만나게 됐다. 그들에게는 내가 일종의 롤모델이더라. 커밍아웃을 하고도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다가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실현한 몇 안 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암울했던 내 청소년기를 돌아보면서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더 할 필요를 느낀다.

-영화 개봉이라는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더라. 4년째 집행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LGBT영화제가 올해부터 퀴어영화제와 분리되면서 갈등을 빚었다.
=김조광수_조심스럽다. 퀴어문화축제가 영화제를 진행할 때부터 이름은 영화제인데 모양새는 축제 속 상영회 같았다. 영화제를 맡으면서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갖추려고 퀴어문화축제쪽에 몇 가지 요청한 게 있었다. 내가 합류하면 영화제의 조직, 형태, 내용도 일반 영화제처럼 하겠다, 집행위원회를 꾸리고 상영작도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 위주가 아니라 폭넓은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로 하겠다. 그쪽에서도 오케이해서 시작한 거다. 난 처음부터 LGBT영화제가 그쪽과는 분리, 독립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들은 그런 적 없다는 거다. 분리와 독립에 대한 서로의 온도차를 아주 세밀하게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지난해 가을쯤 알았다. 내가 생각한 분리, 독립은 그쪽이 원하는 게 아니었기에 다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성소수자 커뮤니티 활동가 몇분이 중재단을 꾸렸다. 이렇게 된 이상 서로 윈윈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성애자들에게도 좀더 열려 있고 대중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어필하는 영화제라면 그쪽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관객과 더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영화제다. 자기 정체성을 잘 살리면 될 것 같다. 아직까지는 감정의 골이 깊어 그렇게까지는 안 되고 있다. 안타깝다.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일 텐데.
=김태용_자전적 이야기인 내 첫 번째 장편 <거인>(2014)이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가을 개봉이 목표다.

김조광수_두 번째 장편 <암행어사와 흡혈선비>(가제)를 준비 중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뱀파이어가 나오는 미스터리 판타지물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2>에 가족에게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아이스맨을 넣은 것처럼 나도 이번 작품에 퀴어적 요소를 은근히 넣고 싶다. 60억원 대작이라 톱스타를 꼭 캐스팅해야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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