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눈 세 친구 현태(지성), 인철(주지훈), 민수(이광수)는 예상치 못한 한 사건을 겪으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그들의 우정이 너무나 강했기에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제 막 그 사건에서 빠져나온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다시는 이런 조합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지성, 주지훈, 이광수, 세 사람의 실제 모습이 적당히 반영된 것 같은 <좋은 친구들>은 그처럼 끈끈한 스킨십으로 채워진 영화다. 남자배우들이라면 한번쯤 서로 다른 개성의 남자들끼리 부대끼는 진한 우정의 드라마를 꿈꿀 텐데, <좋은 친구들>은 이들의 그런 욕구가 절묘하게 하나로 만난 영화다. 게다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무의미할 만큼 그들은 진짜 우정을 나눴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그들은 ‘홍보 인터뷰’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고 했다. 기자들 역시 그저 그들의 즐거운 수다에 슬쩍 끼어든 느낌이었다. (웃음)과 (일동 웃음)을 무한 남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씨네21_<좋은 친구들>은 무엇보다 세 주인공의 팀워크가 중요한 영화예요.
지성_주지훈, 이광수와 친구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 영화를 택한 가장 큰 이유죠.
주지훈_감독님이 얘기하길 한 인물의 내면을 셋으로 쪼개놓은 느낌? 홍보성 멘트가 아니라 셋이서 정말 친해졌어요. 보통 그렇지 않은 배우들이 사이 안 좋은 것 들킬까봐 과도하게 친한 척하는데. (웃음)
이광수_지금 우리 모습이 현장 그대로예요.
씨네21_촬영 내내 거의 부산에서 머무르며 완성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아닐까요.
이광수_맞아요. 눈만 뜨면 만났죠.
주지훈_강제 집중 상태였죠. 놀자고 전화한 친구도 “나 부산이야” 그러면 바로 포기하니까. 저나 광수는 그렇다치지만 지성 형은 결혼한 사람인데도 여기 있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웃음)
지성_뭐야, 나는 별로 안 끼워줬잖아? (웃음)
주지훈_형, 그게 세대차이예요. 형은 약속을 정한 다음 만나는 스타일이고, 우리는 그냥 ‘만나자’ 하면 바로 만나니까. (웃음)
지성_이거 참, 아닌 것 같은데? ‘형은 운동하고 있을 거야’ 그러면서 연락 자체를 잘 안 했잖아?
이광수_왜냐하면 형이 진짜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일동 웃음)
주지훈_맞아. 촬영 중에도 매일 4시간씩 운동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연락하냐. (웃음) 그리고 우리하고 스타일이 좀 다르긴 달라. 처음 시나리오 보고 편하게 맥주 한잔하러 모인 자리에서 “저, 술 끊었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좀. (일동 웃음) 그날도 밤 9시 반쯤 되니까 운동하러 가야한다고 먼저 일어나고.
지성_그게 참 성격 탓도 있고요. 처음부터 동생들과 잘 어울리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주지훈_그래도 형이 우리와 어울리려고 술, 담배를 시작한 건 정말 놀라워요. 좀 짠했어요. (웃음)
씨네21_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의 지성, 활발하게 일단 지르고 보는 스타일의 주지훈, 그리고 조심스레 형들을 따르고 종종 구박당하는 이광수. 배우들의 실제 그런 모습이 캐릭터에도 잘 반영된 것 같아요.
주지훈_단적으로 지성 형은 사석에서도 이도윤 감독에게 ‘감독님’이라 부르면서 깍듯하게 예의를 차려요. 반면 저는 그냥 ‘형’이라고 편하게 부르거든요. 그게 카메라 앞에서 껄렁껄렁 있어야 하는 인철 캐릭터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광수_현장에서 지훈 형이 분위기 메이커였죠.
지성_각자 특별히 애쓰지 않고 저절로 자기 캐릭터를 찾아나가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사실 남자배우들은 남자들끼리 부대끼는 그런 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이 영화가 그랬던 것 같아요.
주지훈_저는 데뷔 뒤 이른바 ‘댄디한’ 역할을 주로 했잖아요. (웃음) 확실히 형이 말한 그런 갈증같은 게 있었어요. 소주 한잔 마시면서 싸웠다가 웃었다가 하는 친구들의 일상적인 드라마요.
지성_신기한 건 그런 분위기에 녹아들다보니 영화를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목표했던 것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진짜 그냥 영화 속 친구들처럼 되어버린 거죠.
씨네21_<좋은 친구들>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1990년작 동명 영화가 있잖아요. 이른바 이런 ‘남자영화’라고 할 만한 작품들 중 각자 좋아하는 영화들이 있다면요.
지성_<대부>(1972)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요. 긴 호흡으로 가는 서사적인 영화들을 좋아해요.
이광수_<미스틱 리버>(2003)를 좋아해요. 한 사건을 겪은 세 친구의 운명이 뒤바뀐다는 내용도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주지훈_누아르영화보다 오히려 <블랙 호크 다운>(2001)이 떠올라요.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하는 정예대원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죠.
씨네21_세 친구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데, 자신의 아역을 맡은 배우들의 얼굴에는 만족하는 편인지요? (웃음)
이광수_제 아역을 연기한 친구는 저 어렸을 때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어요. (웃음)
주지훈_저 역시 스탭들이 그 친구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지성_제 아역을 연기한 친구도 그렇고, 다들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어쩜 그렇게 잘 찾았는지.
주지훈_지성 형 아역은 심지어 성격도 비슷했어요. 그 친구가 17살이어서 쫑파티 때 보호자를 동반한 상태로 술자리를 함께했는데, 맥주를 한 잔도 안 마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이광수_제 아역은 거절을 못해서 한잔 마셨다가 어머니한테 끌려갔죠. (웃음)
주지훈_차라리 그게 나아. 내 아역은 사실 스무살 된 성인이어서 내가 마이크 들고 감정 잡고 있는데 술 취해서 나를 발로 차더라. (웃음)
씨네21_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다른 친구들의 장면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주지훈_광수는 뭔가 삶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혼자 설거지하는 장면이 좋았어요. 지성 형의 경우는 공항에서 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다음, 분명히 저를 주시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공항 밖을 내다보거든요. 그 관망하는 것 같은 감정이 좋았어요.
지성_광수는 사건이 벌어진 다음 막 다투다가 소주병 걷어찰 때 분출하는 그 느낌이 좋았어요. 시나리오와 좀 다르게 표현했는데, 광수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도 더듬고 원래 그렇지 않은 친구가 힘들게 욕도 할 때 진심이 느껴졌죠. 소주병 걷어차는 게 애드리브였는데 발에 유리가 박힌 채로, 마지막에 문을 쾅 닫을 때까지 쭉 감정잡고 연기하더라고요. 다른 배우나 스탭들도 다 놀란 장면이죠. 지훈이는 그 발광하던 애가 바닷가에 가만히 있을 때 좋았어요.
이광수_저도 지훈 형이 얘기한 지성 형의 그 표정이 인상 깊었어요. 뭔가 가슴에 오래 남는 느낌? 그리고 스포일러라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지훈 형은 우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지훈 형이 영화에서 정말 바보처럼 울거든요.
지성_이번에 광수가 고정출연하는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 다 같이 나갔는데, 확실히 거기는 익숙하니까 광수가 잘하더라.
주지훈_광수가 예능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우리를 좀 챙겨줄 줄 알았는데. (웃음)
이광수_그 정도면 많이 챙겨드린 거예요. (일동 웃음) 아무튼 형들이 버벅거리면서 탈락할 때 진짜 통쾌했어요.
씨네21_1980년생 이도윤 감독이 또래 친구 느낌이라 더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주지훈_저는 확실히 그랬어요. 아무래도 제가 연기하는 인철이 예의를 벗어던져야 하는 캐릭터라 마음껏 더 갔죠. 게다가 키도 작고 귀여운 스타일이에요. 전에 민규동 감독님하고 같이 본 적 있는데, 민 감독님을 거인으로 보이게 만드는 유일한 남자감독님이죠. (웃음)
지성_오히려 몇살 더 많은 제가 좀 어려운 게 있었어요. 어떤 장면을 촬영하고 “감독님, 저 잠깐 보실까요?” 그러면 다들 제가 어디 끌고 가서 때리는 거 같대요. (일동 웃음) 정말 억울해요. 그래서 전에 박중훈 선배님이 저처럼 진지하고 조용한 스타일의 배우들은 현장에서 좀더 과하게 ‘좋다, 좋아!’ 감탄사도 남발하면서 웃고 떠들어야 한다더라고요. “감독님~ 우리 밖으로 잠깐만 나갈까?” 그렇게. (웃음) 맞는 말씀 같아요.
이광수_저는 그게 더 무서운데요? (일동 웃음) 그런데 정말 지성 형이 현장에서 점점 더 밝아지는 걸 느꼈어요.
씨네21_<좋은 친구들>을 이제 와서 찬찬히 되짚어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주지훈_살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잖아요. <좋은 친구들>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새삼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선의로 행하는 일들이 이상하게 꼬일 수도 있고, 최소한 이 영화에서 의도적인 나쁜 짓은 없거든요. 따지고 보면 모두가 행복해지려고 했던 일인데,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아이러니랄까. 관객도 그런 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지성_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그렇게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현태가 왜 언어장애인 아내와 살게 됐을까, 민수는 무슨 한이 그리 많아서 술만 마시면 울고불고 과격해질까, 인철은 어떻게 저런 양아치 같은 보험회사 직원이 됐을까, 궁금하잖아요? 그리고 그 지워진 시간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게끔 우리의 연기가 생생하게 다가갔으면 좋겠고요.
이광수_두 형에 비하면 저는 내내 배우는 자세로 임했어요. 지성 형을 보면서 캐릭터를 분석하는 법을 배운 것 같고, 지훈 형을 보면서는 현장에서 욕을 해도 된다는 걸 배웠어요. (일동 웃음) 어쨌건 저는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뭐가 잘 안 돼도 딱히 걱정하거나, 이게 내 한계인가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조급해하지 않으려고요.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도 많고, 배우로서 이제 한 작품 했다고 생각해요.
주지훈_맞아. 넌 아직 1년 남짓밖에 안 됐어. 이제 시작이야. 힘내. (<런닝맨>에서 광수 손 인사 흉내를 내며) ‘아시아 프린스’ 이후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됐어. (웃음)
씨네21_지난해 <관상>과 <신세계>의 이정재 이후 올해 <인간중독>의 송승헌, <우는 남자>의 장동건, <신의 한 수>의 정우성은 다른 남자배우들에게 여러모로 자극이 된 것 같아요.
지성_남자배우로서 곧 마흔이 된다는 어떤 실감이 <좋은 친구들>을 택한 이유 중 하나예요. 들어온 시나리오 중에 원톱, 투톱인 영화들도 있었지만 유독 팀워크가 중요한 이 영화가 계속 밟혔어요. 어떤 의미로든 이 영화가 저에게는 또 다른 시작과 같아요.
주지훈_술자리에서 이런 비슷한 얘기를 나눈 적 있어요. 지성 형은 확실히 경력에서 오는 무게감이 있더라고요. 제가 껄렁껄렁할 수 있는 이유도 형이 베이스를 잘 잡아줬기 때문이라 정말 고마웠어요. 저도 배우로서 그런 걸 좀 갖고 싶어요. 형에 비하면 전 그냥 깃털이죠. (웃음) 광수야, 우리도 나이 먹으면 저렇게 될까?
이광수_빨리 나이를 먹어야겠네요. (웃음)
주지훈_주름만 보면 광수 네가 제일 늙었는데. (일동 웃음) 남자배우 얼굴에 주름은 좋은 건데, 너는 좀 이른 감이 있어.
이광수_영화 포스터에 나온 제 얼굴 보고 다음날 바로 피부과 예약했어요.
씨네21_인터뷰 내내 치고받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중에 세 사람이 <행오버> 같은 영화를 하면 어떨까 싶어요. (웃음)
주지훈_정말 좋죠. 지성 형이 보기와는 달리 그런 거 진짜 잘해요.
이광수_저도 동감! 이 세명 조합으로 꼭 다시 영화 한편 더 찍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