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얘기가 뭐가 있다고….” 보경사 심보경 대표는 인터뷰하자는 요청에 살짝 머뭇거렸다. 매년 한두편은 거뜬하게 만들어내는 젊은 제작자들도 많은 데다가, 현재 후반작업 중인 신작 <빅매치>라면 개봉할 때 최호 감독이나 배우들에게 물어보라는 게 그의 속뜻이다. 하지만 <빅매치>는 심보경 대표가 <고고70>(2008) 이후 6년 만에 내놓는 작품 아닌가. 1993년 명필름에 입사해 <접속>(1997)으로 프로듀서 데뷔한 뒤 <공동경비구역 JSA>(2000), <후아유>(2002), <바람난 가족>(2003) 등 명필름 영화 제작 전반을 이끌었으며,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이 합병한 MK픽쳐스에서 <사생결단>(2006)을 제작했고,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제작사 보경사를 차려 <걸스카우트>(2007), <고고70>, 최근의 <빅매치>까지 여러 편을 만들어온 그다. 말할 게 없을 거라는 그의 우려(?)와 달리 그와 나눈 대화는 지면이 부족할 만큼 차고 넘쳤다.
-<빅매치> 후반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투자사 오퍼스픽쳐스, 배급사 NEW와 함께 12월쯤 개봉하려고 조율 중이다. 그 일정에 맞춰 7월 말까지 편집할 계획이다. CG 분량이 많아 석달 정도 VFX 공정을 거친 뒤 11월에 프린트가 나올 것 같다.
-촬영이 오래 걸렸다고.
=오랜만에 제작해서 버벅거렸나 보다. (웃음) 아니, 이렇게 제작 규모가 크고 액션 신이 많은 영화는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촬영을 시작해 넉달 반 동안 찍었다. 회차로는 80여회차. 지난 5월 보충 촬영을 했고. 많은 공간을 돌아다닌 건 아닌데 한 공간에 오래 머무르며 촬영했다. 가령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8일 찍은 뒤 서울역 분량에 돌입하기 전 콘티와 시나리오를 점검하는 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촬영을 하지 않고 기다린 시간도 많았다.
-오랜만에 현장에 나가보니 어떻던가.
=<고고70>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일을 해서 그런지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보니 풍경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스탭, 매니저의 연령이 낮아졌다. 영화를 만드는 근본은 변함이 없는데 나이, 경험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생각하는 게 다르더라.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이건 뭐지’ 관심을 가지며 차이를 줄여나가야 했다.
-과거 명필름 때부터 현장에 상주하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나이가 든 지금,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던가.
=사흘 밤샌 뒤 송종희 분장감독에게 ‘나 아직 안 죽었다’고 말했다. (웃음) <접속> 때 아침 6시에 집합해 다음날 아침 6시 촬영이 끝난 뒤 집에 가면 8시, 자고 일어나 오후 2시에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때는 힘든 줄 모르고 영화가 처음이라 ‘현장은 이렇구나’ 하며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를 가지고 영화를 찍어본 세대가 아닌 데다가 적진 않지만 오락액션영화로서 규모를 여유 있게 운용하기엔 애매한 예산이라 스탭과 배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스탭과 배우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빅매치>는 상위 0.1%를 위한 게임을 만든 설계자(신하균)와 형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게임에 뛰어든 남자 최익호(이정재)의 대결을 그린 액션영화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고고70>이 끝난 뒤 시나리오를 오랫동안 여러 각도로 썼다. 이야기가 여러 차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건 주인공 캐릭터였다. 그게 <빅매치> 최익호의 출발점이었다. 보통 영화 속 캐릭터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성장하거나 변하는데 익호는 어떤 난관을 마주하더라도 낙천적으로 돌파하는 남자다. <고고70>이 기대만큼 흥행이 되지 않아, 다음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최호 감독과 의견을 맞췄다. 그게 도주 액션과 익호 캐릭터였다. 두 가지를 버무려 지금의 이야기가 나왔다.
-시나리오를 최호 감독과 함께 썼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쓴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처음이다. 4고인가, 5고인가, 그즈음부터 함께 썼다. 최호 감독 스타일이 호텔 같은 데 가서 써오는 게 아니라 회의를 한 뒤 정리하는 스타일이다. 이번에는 각자 쓴 걸 조금씩 반영해서 진행했다. 물론 큰 틀과 최종 정리는 감독과 김수경 작가가 함께했다.
-시나리오는 써볼 만하던가.
=아휴, 보통 일이 아니더라. (웃음)
-투자심사에서 난관은 없었나.
=메인 투자자인 오퍼스픽쳐스 이태헌 대표,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와 함께 개발 과정부터 의논해가면서 아이템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투자심사역이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 게임(격투기 게임이 아니다.-편집자)을 허술하지 않으면서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정으로 만들다보니 작업에 시간이 좀 걸렸다. 발로 뛰어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던 최호 감독이 이번에는 엉덩이로 써야 해서 힘들어했다.
-<후아유>부터 <사생결단> <고고70>, 최근의 <빅매치>까지 최호 감독의 영화를 모두 제작했다. 둘이 무슨 사이인가.
=영화 동지이자 친구. 그의 데뷔작 <바이 준>(1998) 빼고 다 했다. 같이 작업하면서 영화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밖에서 평가할 때 최상의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함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숙해가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파트너십과 더불어 결과도 계속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익호 역에 이정재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지난해 <관상>과 <신세계>로 주가가 올라 그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처음에는 이정재씨보다 조금 어린 나이의 역할로 설정했다. 가슴이 팔팔 끓어서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 하지만 어린 배우가 그런 역을 소화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정재씨가 <신세계>를 함께했던 NEW를 통해 “<사생결단>을 좋아한다”고 전해왔다. 감독님과 (이)정재씨가 서로의 팬으로 먼저 만났다. 함께 작업하면서 너무 감사했다. 난이도 높은 액션 연기도 많았고, 60회차 넘는 촬영 분량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고.
-<빅매치>를 준비하는 동안 명필름의 첫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011)에서 음악 슈퍼바이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일했다. (웃음)
-가족의 힘인가보다. (웃음) 명필름 시절, <접속> <버스, 정류장> 등 여러 영화의 O.S.T 앨범을 제작한 바 있어 아주 낯선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음악은 취미로 들었는데 영화 작업을 하면서 취미가 능력이 되더라. <접속> 때 음악감독과 감독 사이의 빈틈을 메우면서 느낀 건 우리나라에서 음악감독이 단순히 창작자 역할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잘났기 때문에 음악 슈퍼바이저를 맡은 건 아니고, 그간 명필름에서 제작한 영화의 O.S.T 음반을 제작해오면서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쌓였던 것 같다.
-2005년 MK픽쳐스에서 나와 보경사를 차리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언니 심재명 대표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온 건 당연한 거다. 그렇다고 독립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진 않았다. 그때 나가야 했던 이유는 없었다. 그걸 알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왜 회사를 나갔을까.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독립을 하고 나니 시간이 많아져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다. (웃음) 명필름에서 영화를 시작했는데,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누구보다 호흡이 잘 맞았던 사람은 언니였다. 마케팅이면 마케팅, 제작이면 제작 뭐든지 척 하면 척이었다. <접속> 때부터 그런 상대와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회사를 왜 나온 것 같나.
=그만둘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서 명필름이라는 회사의 정체성은 심재명과 이은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사까지 맡았지만 나는 월급쟁이였을 뿐이다. 전혀 나쁜 의미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명필름’스러운 영화 말고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때쯤 양띠 친구인 최호 감독, 김은정 작가와 함께 영화 얘기를 나누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게 자극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됐다.
-모두가 심재명 대표를 주목한 데 대한 아쉬움이나 섭섭함도 있었을 것 같다. 능력만큼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영화인들도 있다.
=아쉬움, 당연히 있었다. 그게 극복이 된 건 아니, 극복이라기보다 언니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명필름 창립 15주년 행사에 갔을 때 <접속> 상영하고 난 뒤 이은, 심재명 대표가 나란히 무대인사를 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박수치며 지켜보는데 갑자기 울컥해지며 깨달았다. 명필름은 두 사람의 브랜드라는 걸. 섭섭한 마음보다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깨달음? 나중에 생각을 했다. 명필름에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그게 보경사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 명필름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라 영원히 남아 있는 시간이다. 딱 그만큼인 것 같다.
-어릴 때 언니와 그렇게 싸웠다던데.
=한번 싸우면 손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질 정도였다. (웃음) 아주 들러붙어가지고.
-심재명, 이은 대표와 함께 상의하고 결정했던 명필름 때와 달리 보경사는 모든 걸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힘들진 않았나.
=보경사는 나 혼자만의 회사는 아니다. 최호 감독도 함께한다. 창립 초반 <후아유> <안녕, 형아>를 함께한 김은정 작가도 참여했다.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고70> 이후 영화사 집, 오퍼스픽쳐스와 함께 투자사 유나이티드 픽처스를 결성했다. <빅매치> 또한 유나이티드 픽처스에서 작업한 결과물이다.
-심재명 대표와 송종희 분장감독은 제작자 심보경을 두고 “너무 여리고, 선한 게 단점이다. 제작자라면 독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리다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 회사 대표로서, 제작자로서, 비즈니스를 해야 할 때 좀 독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 능력이 부족할 수는 있다. 그건 능력의 문제지 성질의 것은 아니다.
-화가 날 때 상대방에게 화를 내지 않고 속으로 삭인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지적을 참 많이 받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화가 안 난다. 진짜다. 사람들이 나더러 무디다고 그런다. 음… 내가 그렇다.
-요즘 젊은 제작자들은 여러 아이템을 동시에 개발해 진행한다. <빅매치>까지 6년 동안 작품 하나 내놓지 않았다. 조급하진 않았나.
=아이템이 뭐가 됐든, 시나리오가 뭐가 됐든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데…. 하지만 완성도 있는 영화를 내놓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짧은 시간에 뽑아내 정해진 공정에 따라 뚝딱 만들어내는 건 내 성격과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아니, 그건 내 능력 밖이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시간과 공을 들여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과거 명필름, MK픽쳐스 때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만큼 동시에 많은 작품을 굴렸던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경험이라기보다 나를 포함해 선후배 영화인들의 사례를 보면서 생각한 거다. 영화일 10년 넘게 하는 동안 느낀 건 한결같아야 한다는 사실. 제작자도 기술이나 트릭만 가지고는 일을 할 수 없다. 순리를 따라야 한다. 작품을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다면 여러 편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요즘도 산에 자주 가나.
=집 뒤에 있는 북한산에 자주 오른다. 등산을 시작한 지 처음 3년 동안 산에 왜 올라가는지 몰랐다. 어느 순간 산에 올라가니 여러 일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혼자서 두 시간 정도 올라갔다 내려온다.
-언젠가 감독을 하고 싶다고.
=희망이라기보다는 꿈이다. 꿈을 가지는 순간 젊어진다. 그간 제작자로서, 프로듀서로서 많은 일을 해왔지만, 물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지만 작가든 감독이든 창작을 하는 쪽으로 도전해보고 싶다. 더 많은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꿈을 가지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깐 말이다.
심보경 대표는 여러 이유로 <빅매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았다.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았고, 스탭의 노동과 시간을 보상해야 하고, 감독이나 배우 같은 스페셜한 집단의 창의성에 기댔다. 나 역시 돈을 끌어와 이들을 한데 모았고. 그걸 보상하는 방법은 돈을 버는 것뿐인 것 같다.” 이 말을 단순히 흥행 욕심보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 많은 관객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