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 스테드먼의 여정에 함께한 우정의 아티스트는 바로 조니 뎁이다. 그는 랠프가 자신의 출연작들인 테리 길리엄의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1998),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등의 포스터 작업을 맡으며 알게 됐고 이후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나눴다. 1936년생인 랠프 스테드먼은 60년대 영국 사회와 정치를 강도 높게 풍자하는 카투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헌터 S. 톰슨과 이른바 ‘곤조(Gonzo) 저널리즘’을 창시했다. 취재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신경 쓰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관찰해, 가끔은 부득이한 범법을 저지르게 되더라도 생생한 1인칭 시점의 기사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이처럼 수고스러운 장편 데뷔작을 만든 찰리 폴 감독의 태도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최초 공개되는 랠프의 작업실에서 그만의 독특한 작업방식을 엿보고, 진솔한 인터뷰를 끌어낸 것은 물론 랠프의 개인 자료들에 제한 없이 접근했다. 물론 카메라를 들이댄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에 삽입된 모든 그림들과 랠프의 출판물인 <체리나무 캐논> 등이 최초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조니 뎁을 큐레이터 삼아 마치 슬라이드쇼 보듯 즐기기만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것은 역시 팔순이 다 된 한 예술가가 보여주는 변함없는 열정과 고집스런 자의식이다. 초기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더 자극적이고 도발적이지 못했다”며 아쉬워하고, 스스로 ‘빈곤과 궁핍의 박물관’이라 명명한 뉴욕에서 만난 부랑자들을 떠올리면서 “삽화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며 회한에 잠긴다. 그런 그에 대해 테리 길리엄은 “함께 시위하던 우리가 늙고 무력해졌을 때도 그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랠프는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더불어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꾸준히 자화상으로 남긴 렘브란트를 ‘역사상 가장 탐구적인 화가’라며 찬양하고, “피카소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창조적인 삶을 살았다. 종이 위에서는 그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다”며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로 피카소를 떠올릴 때는 마치 화가를 꿈꾸는 소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는 내내 작품에 반하고 사람에 반하게 만드는 멋진 여행과 우정의 다큐멘터리다. “미지와 불가능에 도전하는 예술가는 언제나 경이롭다”는 조니 뎁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