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브렌턴 스웨이츠)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대학생이다. 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보통 이상의 두뇌를 가진 MIT 공대생이며, 헤일리(올리비아 쿡)라는 이름의 예쁘고 착한 여자친구와 서로 척하면 척일 정도의 죽마고우 조나(뷰 크냅)도 있다. 어느 여름, 세 친구는 미국 횡단여행을 하던 중 천재 해커 ‘노마드’가 보낸 의문의 메시지들을 받고 그를 추적하다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도착하는데, 그를 만나기는커녕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이상한 격리시설에서 깨어나게 된다.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데이먼(로렌스 피시번)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 닉은 다른 두 친구를 데리고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정체불명의 음모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 따름이다.
<더 시그널>은 2000년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SF영화와 드라마들을 떠올리게 하는 가운데 색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불안한 젊은이들이 이상 현상을 겪은 뒤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는 부분은 <아키라>의 피를 물려받은 <크로니클>과 하이틴 SF물들을, 초자연적 현상과 외계인 접촉설과 정부의 음모론 등을 마구 뒤섞어낸 방식은 <디스트릭스 9>을 비롯한 일련의 음모론 영화들을, 주인공이 서 있는 곳이 탈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지배체제 내부임을 보여주는 결말은 <매트릭스>로 대표되는 여러 가상현실 영화들을 ‘얼핏’ 연상시킨다. 이토록 많은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 영화는 관객에게 완벽한 이해보다 느슨한 상상을 요구한다. 비유하자면 완전히 분화한 이미지가 아닌 줄기세포 상태의 이미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문제는 잠재적 이미지들이 실체적 이미지로 발현되지 못한 채 끝나버린다는 점이다. 세 주인공의 손목에 새겨진 숫자의 의미, ‘노마드’의 정체, 격리시설의 용도와 위치 등이 어느 정도 밝혀지긴 하지만, 자초지종을 재구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단서들은 아니다. 가령 세 젊은이의 각기 다른 신체 부위에 가해진 끔찍한 실험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략 짐작만 하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이런 부분들을 명확히 설명하려다가 체면을 구기는 SF영화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윌리엄 유뱅크란 젊은 감독은 의문의 것들, 알 수 없는 것들, 이상한 것들, 정체불명의 것들의 뉘앙스로 허약한 이야기 구조를 방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 의미심장하다기보다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