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진짜 영웅이 아니면 어때?” <천하무적 키코리키>
2014-07-16
글 : 임정범 (객원기자)

키코리키에는 ‘천하무적’이 필요가 없다. “짜릿한 성취감도, 화려하게 빛날 기회도 없는” 외딴섬 키코리키는 평화로운 낙원이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TV가 문제의 시작이다. 키코리키의 순진한 동물 주민들은 24시간 생중계되는 파란 가면 루시엔의 활약에 단번에 사로잡힌다. 악당 칼리가리 패거리에 맞서 도시를 지키는 영웅 루시엔! 그를 TV로만 지켜볼 수 없다는 결심을 한 그들은 직접 그를 만나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배를 띄운다. 그러나 꿈은 여기까지다. 파도를 넘어 힘겹게 도시에 이르자 입국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이민국 감옥에 갇히고, 홀로 떨어진 고슴도치 지코는 삭막한 거리에서 길을 잃는다. 고생 시작.

<천하무적 키코리키>는 2004년 러시아에서 TV시리즈로 방영된 애니메이션 <키코리키>의 극장판이다. 이야기는 끝까지 ‘천하무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파란 가면 루시엔의 활약은 연출된 TV쇼에 불과하고, 루시엔을 연기하는 배리는 값싼 급료에 고용된 노동자일 뿐이다. 키코리키의 주인공들이 겪는 갈등은 악당 칼리가리에 맞서는 과정도, 루시엔을 진짜 영웅으로 만드는 일도 아닌, 삭막한 도시에서 벌이는 귀여운 소동극 그 자체다. 화려한 모험담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의외의 전개로 여겨질 수 있지만, 동물을 본뜬 둥글둥글한 캐릭터들의 귀여운 모양새와 순진한 행동에 걸맞은 이야기다. “진짜 영웅이 아니면 어때? 덕분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라는 마지막 교훈도 만족스럽다. ‘순수함’을 끝까지 밀고 나갈 줄 아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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