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콘티대로 찍어야 해?
2014-07-25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좋은 친구들> 유억 촬영감독

촬영감독 2014 <좋은 친구들> <남자가 사랑할 때> 2012 <미쓰Go> <청출어람>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신세계>

촬영팀 2010 <박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부당거래> 외 다수

유억 촬영감독은 대뜸 ‘콘티 무용론’부터 내놨다. <좋은 친구들>을 찍으면서 그는 배우의 동선이나 카메라의 위치가 콘티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왜 선수들이 필드에 나가면 예측을 뛰어넘어 움직이는 게 있지 않나. 어떻게 찍을지 현장에서 정리한 경우가 많았다.” 5개월 넘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공들인 콘티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던 건 이도윤 감독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과도한 카메라 움직임은 지양하고 최대한 덤덤하게 있는 그대로 찍자고 했다.” 그 약속대로, <좋은 친구들>의 카메라는 인물보다 먼저 움직여 관객이 미리 상황을 예측하게 만들기보다는 인물과 같은 위치이거나 인물의 뒷모습을 좇는다. “인철(주지훈)이 공항 화장실에서 비틀거리며 나올 때 카메라가 미처 못 따라갔다. 그가 공항 벤치에 앉을 때도 그렇게 좌우로 비틀거리며 앉을 줄 몰랐다. 그 장면에서 카메라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게 좋았다. 인물의 감정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고.”

우연과 즉흥을 맹신하는 건 아니다. 현장과 배우들을 쉼없이 관찰한다. “찍을 때 보니까 인철과 민수(이광수)는 긴 팔다리에서 나오는 정서가 있더라. 되도록 그걸 끊고 싶지 않았다. 팔을 양쪽으로 폈을 때 그걸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카메라를 멀리서 잡았다.” 남다른 장신 배우들을 앙각으로 찍다보니 천장의 구조물도 그대로 노출됐는데 그런 날것의 느낌이 외려 극에 분위기를 더했다. <부당거래> <신세계> 때부터 호흡을 맞춘 배일혁 조명감독과 남경민 조명 퍼스트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내가 워낙 계산되지 않은 숏을 많이 쓰니까 아예 조명을 천장 위로 숨겨뒀더라. 덕분에 마음껏 앵글을 잡았다.”

‘사수’였던 정정훈 촬영감독 역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보고 그런다. 너만의 색깔이라는 건 아직 멀었다고. 그러고선 자신이 찍은 영화를 보고 스킬을 최대한 많이 구현해보라고 하신다.” 정정훈 촬영감독과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 단편 <노란 잠수함>으로 처음 만났고, <찍히면 죽는다>(2000)부터 <신세계>(2012)까지 함께 작업해왔다. 그는 지금도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면 정정훈 촬영감독님과 함께했던 <친절한 금자씨> <박쥐> 때는 어땠지, 라며 습관처럼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돌아보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때그때의 촬영의 장단점을 데이터화해두고 가이드로 삼는다. 여기에 내 경험과 생각을 덧입혀 나만의 새로운 판단 기준을 만들어나가는 거다.” <미쓰GO>로 데뷔한 이후 <남자가 사랑할 때> <좋은 친구들> 같은 ‘남자영화’를 연달아 찍었지만 유억 촬영감독은 “어떤 스타일의 촬영자라고 불리길 바라진 않는다”. 그보다는 “과장 없이 인물의 감정과 눈빛을 잡아내는”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 같은 시선이 촬영감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유억 촬영감독은 현재 조규장 감독의 멜로영화 <그날의 분위기>를 준비 중이다.

사진제공 유억

손목시계

평소 손목시계를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는 유억 촬영감독이 손목시계를 찬 날은 100% 촬영일이다. <신세계> 촬영 때부터 지금까지 촬영장에 나갈 때면 항상 몸에 지녔다. “작업이 안 풀린다 싶으면 항상 이 시계를 보게 된다. ‘아직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렇게 저렇게 찍으면 되겠구나’ 혼자 계획을 짜고 생각을 정리한다. 진정 효과랄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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