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이하 <반격의 서막>)에서 제이슨 클라크가 연기한 말콤은 유인원 세력과 인간 세력의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인간들의 미래를 어깨에 지고 유인원을 찾아가는 자로서, 자연히 유인원 세력과 가장 대립하기 쉬운 입장에 놓여 있다. 그러니 말콤이 다른 선택을 내렸다면 인간과 유인원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정면으로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르고, 당연히 영화의 성격 역시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간들이 시저의 유인원 그룹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다들 유인원에게 총을 겨누고 있을 동안 말콤은 단호하게 총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명령한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이 짧은 장면이 말콤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차분히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시저에게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며, 당장 행동해야 할 때도 그 다음 수를 내다볼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 말콤이 총에 맞은 시저를 간호해주는 장면 역시 그 좋은 예이다. 한시가 급한 순간에 시간을 들여 시저를 치료하는 것은 단순한 보은, 혹은 동정심이 아니다. 말콤은 시저만이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유일한 인물이며, 그 판단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나쁘게 흘러가던 상황을 바꿔놓는다.
결과적으로 말콤의 이러한 성격적 특징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리듬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반격의 서막>은 그렇게 ‘빠른’ 영화가 아니다. 시저와 코바, 또는 드레퓌스 같은 인물의 밀도 높은 감정의 충돌이 그런 착각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사건 자체는 정해진 박자를 따라 신중히 흘러간다. 그리고 코바의 돌발 행동이나 인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이야기의 감정과 리듬에 불이 붙을 때마다 말콤은 담담한 표정과 함께 과열된 스크린을 식힌다. 최근 블록버스터의 경향, 즉 파편화된 편집과 그 조각난 장면으로 자극적인 볼거리와 감정을 경쟁하듯 과시하는 것에 비교해볼 때 <반격의 서막>이 ‘고전영화’의 분위기마저 풍기는 것은 결국 말콤의 공이 크다. 그는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진 동시에 그 의지를 은근한 부드러움으로 나타내며, 이를 통해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인물이다.
그런데 제이슨 클라크가 처음부터 이런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실 지금까지 ‘차분함’,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먼 역할들을 주로 맡았는데,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그가 날 때부터 갖고 있는 고유한 인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가 출연한 영화를 통해 쌓아온 이미지 때문이다. 1969년 호주에서 태어나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제이슨 클라크의 경력에서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강인한 인상을 주는 얼굴이다. 특히 그의 단단해 보이는 턱과 도드라진 이마는 제이슨 클라크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형성하며 그가 비슷한 성격의 인물을 반복적으로 연기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경찰, 군인, 범죄자와 같은 역을 도맡았으며 노동자나 정치인을 연기할 때도 비슷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즉, 말이 없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날카롭고 거친 성격과 고집에 가까운 의지를 드러내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것이다.
이를테면 TV드라마 <브라더후드>(2006~2008)에서 동생조차 적으로 돌리는 굳센 심지의 정치인을 연기한 그는 다음 드라마인 <시카고 코드>(2011)에서 옷만 방탄 조끼로 갈아입은 채 웃음이 없는 과묵한 인물을 연기했다. 연기의 폭이 그리 넓지는 않았던 것이다. 영화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음 작품들의 제목과 역할만 보면 우리는 제이슨 클라크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었을지 대강 상상할 수 있다. <데스 레이스>(교도소 간수), <퍼블릭 에너미>(은행강도), <텍사스 킬링 필드>(불량배),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갱), <제로 다크 서티>(군인), <화이트 하우스 다운>(테러범) 등등. 이처럼 그는 지난 몇년간 가장 익숙한 이미지로 자신을 이용하는 영화들에 기꺼이 출연해 묵묵히 비슷비슷한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물론, 제이슨 클라크는 한 가지 모습만 가진 배우가 아니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에 걸맞은 배역과 그 배역을 만날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특히 그는 ‘깊고 푸른 눈’이라는 숨은 무기를 갖고 있는데, 주로 클로즈업에서 도드라지는 그의 눈은 예상 못한 순간에 빛나며 제이슨 클라크의 단순해 보이는 연기에 감상적인 호흡을 불어넣는다. 이를테면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의 클라크는 부상으로 누워 있는 동료를 슬프게 바라보는 짧은 연기로 남성 공동체 특유의 진한 감수성을 덧대었으며, 그보다 먼저 출연했던 <휴먼 컨트랙트>(감독 제이다 핀켓 스미스, 2008)에서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무방비한 약함까지 그럴듯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물론 바즈 루어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제이슨 클라크의 여린 감수성을 적극적으로 끄집어내 거칠게 살아온 하층민 남자의 눈에서 한 줄기 굵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채 온몸으로 슬퍼하는 그의 모습은 클라크의 이전 모습만 기억하는 관객에겐 분명 낯설었겠지만 정확히 그만큼의 감정적 설득력을 발휘했다.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속절없이 주저앉아버리는 남자의 심정이 어떠할지 관객으로 하여금 저절로 상상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기의 연장선 위에 <반격의 서막>의 말콤이 있다. 클라크는 지금까지 연기 영역을 꾸준히 넓혀온 결과 마침내 이 영화를 통해 숨겨왔던 부드러운 카리스마까지 연기한다. 사실 <반격의 서막>의 주인공은 결국 시저이며, 살아남은 인간들의 복잡한 심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건 게리 올드먼이 연기한 드레퓌스였다. 하지만 제이슨 클라크의 말콤은 그 둘 사이를 묵묵히 오가며 소위 ‘명장면’ 없이도 영화의 주제와 전체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이 연기한 말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그가 처음부터 리더였거나,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을 클라크가 이 영화에서 펼친 연기에 그대로 대입시켜도 좋을 것 같다. 그는 극의 앞으로 나서는 대신 이야기가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지금까지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마초의 이미지로 굳어져가던 그가 앞으로 새롭게 보여줄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제이슨 클라크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앞에서 언급한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을 맡을 것 같다. 그는 이미 <에베레스트>(감독 발타자르 코마쿠르)에서 산악인 역할을 맡았으며 <터미네이터5>에서는 존 코너를 연기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눈바람에 지친 그의 눈빛과 총을 든 채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이다. 하지만 ‘강한 남자’의 캐릭터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쁜 것은 수많은 배우들이 연기해온 스테레오타입을 게으르게 반복하는 것이라 전제했을 때, 우리는 곧 강한 인상 뒤로 복잡한 감정을 비칠 수 있는 또 한명의 무게감 있는 좋은 배우를 만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의 본격적인 활약은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
magic hour
몸짓과 눈빛으로 그리는 전쟁터
제이슨 클라크의 굳은 얼굴 뒤에 숨은 섬세함과 부드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할 때 <제로 다크 서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제시카 채스테인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10분 동안 펼치는 연기로 극의 전체 분위기를 장악하는 건 단연 제이슨 클라크이다. 프로페셔널한 군인 역을 맡은 그는 포로를 고문하는 연기를 거의 리얼타임으로 생생히 보여준다. 스스로 만들어낸 끔찍한 풍경 앞에 흥분을 절제하며 마치 육체노동을 하듯 일련의 고문 과정을 수행하는 그의 움직임과 눈빛은 영화의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철저하게 냉정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오히려 그 과잉된 긴장을 통해 곧 깨어지고 말 전쟁터의 불안한 공기를 형상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