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10명의 탈북 청소년을 데리고 산다.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던 김태훈(사진 오른쪽)씨는 동료의 소개로 북한 이탈 주민들을 돕는 하나원에서 봉사하다 급기야 소년들과 함께 가정을 이룬다. 잘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만 전념했다. 소규모 시설이라는 인식을 지우기 위해 ‘가족’이라는 이름의 그룹홈을 만들었다.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그룹홈은 전국에 13개 정도가 있지만 그중 개인이 운영하는 것은 김태훈씨의 ‘가족’이 유일하단다. 극영화 연출부 출신의 김도현(사진 왼쪽) 감독으로 하여금 난생처음 다큐멘터리를 찍게 만든 김태훈씨의 매력은 <우리가족>에 고스란히 담겼다.
-서로 만난 계기는.
=김도현_아는 동생에게 이상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탈북 청소년과 함께 산다는 데 인간적인 호기심이 일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슬프면서도 좋은 감정을 느꼈다.
김태훈_이전에도 촬영하고 싶다는 액션을 취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감독님처럼 적극적인 경우는 없었다.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 찍겠다고 하셔서 하게 됐다.
김도현_함께 자면서 생활했다. 그런데도 놓친 장면이 있기도 하고. 이렇다 할 갈등이 없어 편집하는 분도 의아해했는데 실제로 갈등이 없었다. 처음에는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중에 익숙해지니까 신경도 안 쓰더라.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들과 회의를 거쳐 새로운 식구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실제로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인지 의문스러웠다.
=김태훈_반대해서 들어오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을 직접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서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게 한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이런 판단을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 지내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거부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지난 가을 촬영이 끝나고 총 3명이 들어왔는데 모두 회의 없이 들어왔다. 그 뒤 4명의 아이들이 집을 나갔다. 직업전문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아이, 농사짓겠다고 신부님 밑에 들어간 아이 등 각자 사정은 다르다. 현재 나를 포함해 10명이 함께 지낸다. 10명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개별적인 후원을 받지 않는 것은 탈북 청소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던데.
=김태훈_그보다는 독립적인 운영을 위해서라는 게 솔직한 대답이다. 후원자라는 명목으로 우리가 사는 집에 사람들이 너나없이 드나드는 것이 싫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서겠지만 방문자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행동에서 어떤 코드가 읽힌다. 그 눈빛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 남는다. 아이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방송국에서 후원금을 모아준 적이 있다. 그래도 끝끝내 10원 한푼 받지 않았다. 하도 끈질기게 설득하는 통에 그 돈을 우리의 이름으로 재단에 후원하는 형식으로 거절했다. 공기업과 사기업의 공모사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두곳 이상 지원받으면 충분히 먹고살 만하다. 예산서와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모두 영수증 처리를 해야 해서 10원 하나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제약은 있지만 그래도 집에 사람이 불쑥 찾아오는 것보다는 낫다.
-당신에게 아이들은 어떤 의미인가.
=김태훈_아이들 덕에 멋진 삶을 사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각자 계획을 들려달라.
=김태훈_사회적 기업을 만들려 한다. 현재 고용노동부 청년창업팀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상태다. 기업을 운영하여 번 돈만으로 집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김도현_극영화를 계획 중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건 아니지만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우리가족>과 연관될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