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까지 청소를 일년에 대여섯번 하고 살았다(지금은 한달에 한번. 내가 부지런해진 건 아니고 집이 작아졌다). 사람이 어떻게 그러고 사나 싶을 텐데… 맞다, 사람은 그러고는 못 산다. 나는 먼지 알레르기가 생겼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는 평범한 사무직이라고 주장하는 내 직업을 의심했다. “그냥 사무실에만 있어서는 이럴 수가 없는데요. 공장이나 창고 같은 데서 일하는 거 아니에요? 먼지가 많은?” 나는 볼을 붉혔다. “그게 아니고 집에… 먼지가 좀….” 의사도 볼을 붉혔다, 저게 사는 거냐. “일단 약을 바르시고요… 청소를 하세요.” “네.”
병원에서 돌아와 청소를 하려고 집 안을 뒤집은 나는 자연의 경이와 마주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몇달을 묵은 먼지는 시간을 거슬러 흙으로 화했고(원래는 흙이 먼지가 된다) 100% 무기물인 타일 사이 실리콘은 검푸른 곰팡이의 보금자리로 변하여… 더 이상의 혐오스러운 묘사는 자체 검열한다. 어쨌든 지금껏 이 집에서 숨 쉬고 살았다는 것이 신기해진 나는 결론을 내렸다, 프로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달 벌어 한달 먹고사는 내가 가사도우미를 맞이하는 도(道)를 알 리가. 그래도 남인데 집이 깨끗해야지, 싶어서 가사도우미 부르려다가 청소할 뻔했다. 아이, 어떡하지? 주부 커뮤니티를 뒤져봐도 나오는 정보라곤 4시간에 4만원이라는 평균임금뿐. 간식을 준비한다, 먹고 싶으면 자기가 싸와라. 손빨래 안 시킬 거면 뭣하러 도우미를 부르나, 아무리 그래도 청바지 손빨래는 너무한다, 네가 한번 해봐라. 반찬은 왜 안 하나, 추가요금 주든가. 그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나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애타게 가사도우미의 도(道)를 찾아서.
하지만 내가 놓친 것이 있었으니 영화에는 가사도우미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가정부가 나온다. 그 차이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입주 여부와 고용주의 계급 차이가 아닐까, 라고 답할밖에. 어쨌든 나는 그저 청소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이 없는 온갖 가정부만 구경하고 말았다.
가정부 하면 역시 드라마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임실댁(허진)이다. 안 하는 것 같으면서도 할 말 다 하고, 그런데 잘리지도 않는 내 인생의 롤모델, 임실댁. 하지만 누가 우리 집에 와서 뭐가 이렇게 지저분하냐고 웅얼거리며 뭐라고 하면 난 임실댁네 사장님 김용림처럼 포악하게 나가기는커녕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열심히 걸레질을 하겠지. 어디 좀더 만만한 가정부는 없을까. 그래서 제목부터 순종적인 <하녀>를 보기 시작했다.
제목만 만만했다. <하녀>의 가정부 윤여정처럼 깐깐하게 생긴 여자가 정장을 차려입고 들어오면 나는 왠지 팀장님을 만난 신입사원이 되어 커피를 타다 바칠 것 같았다. 아, 우리 집엔 커피도 없지, 죄송해요 여사님. 어쨌거나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이 종일 구두 신고 정장 입은 채로 요리에 청소에 애 보기까지 하는 ‘하녀’들을 보고 있노라니 노동시간의 과반을 딴짓으로 보내는 내가 부끄러웠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는 권리를 보호하는 ‘가사노동협약’을 채택했다는데,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 걱정하기 전에 내 걱정이나 하자. 난 사장이 노동절을 싫어해서 노동절에도 사무실 창밖으로 집회 구경하면서 딴짓한다고.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가정부의 적정 노동시간은 몇 시간일까. 요즘 영화를 보면 상처받을 거 같아서 1960년대 미국 남부 흑인 가정부들이 나오는 <헬프>를 골랐는데, 그래도 상처받았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8시간. 21세기 한국의 회사에 다니면서 사내 먹이피라미드의 정중앙에 위치한 나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데! 야근했다고 늦게 출근하는 것도 없고, 휴일에 일해도 수당 같은 건 없고, 5분 지각하면 장부에 기록된다고! (내가 2013년 지각 부문 우승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냥 하녀다. 사장 아버지(전직 사장)가 친구들 불러다 회사에서 잔치를 벌이면 직원들이 접시 나르고 고기 굽는다. 내가 중년이 되어 이걸 하려고 그 오랜 청춘을 접시와 술잔 나르며 수련했구나! 8시간 일하는 가정부가 낫겠다.
이왕 상처받은 거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2004년 영화인 <스팽글리쉬>에서 멕시코인 가정부가 받는 월급은 2600달러. 내가 지금 가사도우미를 부르겠다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사도우미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런데 그 와중에 궁금했던 게 있는데, 중년 남편이 있는 집에서 어떻게 파스 베가를 가정부로 쓰겠다는 만용을 부릴 수 있을까. 가정부가 사생아를 낳았다고 고백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이름을 포털에 검색하면 ‘슈워제네거 가정부 사진’이 자동으로 완성된다. 똑똑한 포털이 시키는 대로 그걸 클릭했더니 진정한 사랑의 증거가 나타났다. 한번 봐라, 정말 사랑했구나, 싶어진다. 그런데 파스 베가라니. 나는 이런 가사도우미는 절대 쓰지 않을 테야, 한눈팔 남편도 없는 나는 또다시 쓸데없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가사도우미를 불렀느냐, 못 불렀다. 일단 방구석마다 쌓여 있는, 옷을 입었던 시기에 따라 사계(四季)의 뚜렷한 지층을 보여주고 있는 옷 무더기라도 치우자, 결심했지만 그걸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이사했다(그 세월이 2년). 그전에 먼지 알레르기는 자연 치유됐지만 햇볕 찬란한 남쪽 땅으로 갔더니 햇볕 알레르기가 생겼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난생처음 정상적인 회사원 생활을 했더니 회사 알레르기(일명 화병)가 생겼다. 결국 문제는 먼지가 아니었던 거다. 난 그냥 사는 게 알레르기야.
요리 잘하는 게 최고!
고용 불안의 시대에 가정부로 살아남는 두세 가지 기술
요리 <헬프>의 미니는 가정부로 먹고살기엔 지나치게 입이 거칠고 난폭하지만 한 가지 비기(祕技)가 있으니, 미시시피 최고의 요리사라는 거다. 요리가 성깔을 이긴다. 바른말만 하는 임실댁이 쫓겨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옷은 원래 사입는 거고 청소는 (나만 빼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평생 외식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심지어 먼지 구덩이에서 구르면서도 그게 먼지 구덩이인 줄 몰랐던 나도 밥은 한다. 뭔가 굉장히 좋은 영화라는 <헬프>를 보고 원작도 읽었지만, 책과 영화를 보고 남은 건 종이 봉지에 닭을 넣고 흔들어 만드는 미니의 프라이드 치킨뿐.
해결사 섬세하게도 아침 식사에 후추를 딱 두번만 뿌리는 한편으로, 주인의 불륜을 감지하여 뒷돈까지 챙기는 <하녀>의 병식(이게 윤여정이 맡은 배역의 이름. 인터넷 보고 알았다!)을 보고 감탄하기엔 이르다. <키핑 멈>의 가정부 그레이스(매기 스미스)는 도망가려고 했던 남편과 그의 정부를 토막 살해한 비범한 여인으로서, 출소한 다음에도 프로 킬러를 능가하는 결단력과 실행력을 자랑하며 고용주의 가정을 지킨다. 게다가 동기 부여 강사보다도 낫다. 그녀를 만나더니 엄청나게 지루했던 남편이 개그를 치기 시작하고, 문제아 딸내미가 조신하게 요리를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맥고나걸 선생님(역시 매기 스미스)보다 이쪽이 마법사.
비밀 밥을 태워도 된다, 방구석마다 먼지가 굴려다녀도 상관없다, 집안의 비밀만 쥐고 있다면. 미국 남부 흑인 가정부의 현실을 작가 아가씨에게 폭로한 미니가 마련한 비장의 무기도 그것이다, 비밀. 주인이 돈 떼먹었다고 흥신소 뺨 치는 기억력과 조사력으로 비밀을 폭로한 (채동욱의) 임모 여인네 가정부를 보라. 그러고 보니 나도 실질적인 하녀로서 폭로할 비밀이 몇개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