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서른살이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남자 <숫호구>
2014-08-06
글 : 송경원

원준(백승기)은 서른살이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순결한 호구다. 친구랑 나가논다더니 기껏 쥐불놀이나 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괴짜 생명공학박사 한철(조한철)이 그에게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아바타(손이용)를 선물로 준 것이다. 저주받은 몸뚱이의 흑역사는 뒤로한 채 슈퍼 섹시 아바타의 힘을 빌려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원준. 그 와중에 동네 헌책방의 아르바이트생 지나(박지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지나가 좋아하는 건 자기가 아니라 아바타라는 사실에 좌절한다.

<숫호구>는 ‘감성 충만 C급 무비’를 모토로 때론 귀엽고 때론 황당무계한 상상력을 소위 ‘병맛’스럽게 버무린다. 감독 겸 주연 백승기의 자전적 사연이라는 이 이야기는 짠하고 웃긴이 땅 위 수많은 호구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데 사랑스러운 건 자잘한 메시지가 아니라 뻔뻔한 과정이다. 아무리 봐도 섹시한 구석이라곤 없는 아바타를 두고 섹시하다고 하면 섹시한 거다.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는 NG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써도 기발한 웃음으로 해석되는 키치적인 마력이 있다. 기존 상업영화의 연장선에서 본다면야 만듦새가 조악하기 그지없고 전개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이 정도로 대놓고 뻔뻔하면 왠지 설득당하고 싶어진다. 저예산 독립영화답지 않게(?) 야심만큼은 스펙터클한데 SF, 드라마, 멜로, 판타지까지 완성도는 둘째치고 장대하게 (혹은 대책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와 널뛰는 감정 폭이 차라리 시원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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