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라는 글자를 티셔츠에 새겼다? 프로펠러가 달리 모자는 또 뭐지? “생기발랄”이 컨셉이라는, 서른세살 남자가 걸어왔다. ‘감성코믹 SF연애판타지’를 표방하는 <숫호구>(2012)의 백승기 감독이다. 서른살 먹도록 연애 한번 못해보고 이리저리 치이는 <숫호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 <숫호구>의 개봉(8월7일)을 앞두고 있다.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숫호구>가 후지필름 이터나상을 수상한 이후 2년 만이다. 영화를 배운 적은 없지만, 재미만 있다면 자급자족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이 재기발랄한 감독을 직접 만나봤다.
-개봉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아트나인의 추석영화제 때 상영 기회를 얻었는데 이틀 연속 매진이었다. 영화를 좋게 본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가 개봉을 도와줬다.
-연출, 각본, 주인공까지 맡아서 다 했다.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냐는 질문을 꽤 받았을 것 같은데.
=나를 ‘숫’(더럽혀지지 않아 깨끗한 상태를 뜻하는 접두사.-편집자)으로 오해하는데 호구는 맞는 것 같다. 제작 당시부터 지금까지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 나는 분명 재밌는 말로 여성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실속은 없다. 돈만 빠져나가고. 그런 나를 발견하고 캐릭터를 잡았다. 물론 영화니까 과장은 있지만.
-주인공 원준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바타가 등장한다.
=<아바타>(2009)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내겐 예산도, 기술도, 유명 배우도 없었다. 하지만 소재는 못 쓸 이유가 없잖나. 인터넷에 내 영화를 올린다 한들 누가 봐줄 것 같지 않아 아예 사람들이 아는 작품을 패러디했다. <다빈치 코드>는 <달마도 코드>, <은하철도 999>는 <은하전철 999>, <가위손>은 <망치손>. 이런 식으로 짧은 영상을 만들었다.
-인천예고와 인하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한 전직 고등학교 미술교사에서 영화감독이 됐다.
=생계를 위해 교직에 몸담았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배우, 영화감독, 댄스 가수 되는 게 꿈이었다. 대학 때 친구들과 갔던 MT에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패러디한 영상을 찍은 게 시작이었다. 인터넷에서 동영상 편집법을 찾아가며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편집을 했다. 내가 만든 첫 영화를 보는데, 갈 길이 뭔지 알겠더라.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려면 직접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대학 친구 셋이서 동인천(감독은 8살 이후 줄곧 인천에 거주 중이다.-편집자)에 사무실을 얻어 제작사 꾸러기 스튜디오를 열었다. 인근 슈퍼를 임대해 DGV(동네 극장 빅토리의 약자)도 마련했다. 주민들과 함께하는 상영회, 옥상영화제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 생일잔치도 해줬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했는데 수익을 내진 못했다. 또 내가 학교에 출근하면서 극장은 문을 닫았다.
-영화의 만듦새 면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끼리의 영화, 우리끼리의 영화사였는데 막상 정식 개봉까지 하고 보니 고민이긴 하다.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나간다는 꾸러기 철학을 지키고 싶다. 꾸러기만의 확실한 색깔이 좋다. 절대미를 좇아가고, 못하면 낙오된 것처럼 여기는 것보다는 좀더 다양한 영화를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제자들은 뭐라고 하나.
=부천영화제 때는 <숫호구>가 15세 관람가여서 제자들도 보고 좋아해줬다. 근데 청소년 관람불가가 돼서 당황스럽다. 선생님이 좋은 영화 만들게, 했는데 뭔가 죄를 진 것 같고. (웃음) 항상 꿈을 좇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나도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꿈을 이룬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