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을 넘어설 수 있는 건 마블밖에 없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베일을 벗자마자 벌써부터 마블 최고의 영화가 될 거란 들뜬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히어로들을 우주로 보내버린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마블은 굳이 히어로에 매달리지 않고 제대로 된 우주 어드벤처를 완성해냈다. 삐딱한 캐릭터들이 모여 제대로 삐딱선을 타는 상상 이상의 모험. 이 한없이 가볍고 유쾌한 캐릭터들을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어디까지 확장시킬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새로운 우주는 열렸고, 바야흐로 모험의 시대가 왔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8년, 마블은 자신의 세계관을 영화로 새롭게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언맨, 닉 퓨리, 헐크(2008년), 블랙위도우(2010년), 토르, 호크아이(2011년)가 차례로 등장했고, 2012년에는 ‘어벤져스’란 이름으로 이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한 영화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그 결과물에 모두가 만족스러워했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어벤져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관객은 더 많은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 즉, 어벤져스 이상의 새로운 캐릭터와 더 큰 세계관을 보고 싶어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제대로 채워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마침내 도착했다.
화가 나면 몸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남자나 신화 속 인물이 망치를 들고 싸우는 건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로봇 슈트를 입고 날아다니는 군수 회사 사장이나 아름다운 외모의 비밀 스파이는 물론이다. 하지만 말하는 너구리와 걸어다니는 나무가 정의의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이는 바로 터무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기발함으로 인해 제작 전부터 팬들의 걱정을 샀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이야기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제작은 언뜻 성급해 보였을 수도 있다. 마블은 <아이언맨3> <토르: 다크 월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같은 속편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훌륭하게 입증했다. 죽도록 고생하는 토니 스타크, 로키와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토르, 그리고 진지하게 망가지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에 팬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고, 그것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이미 선보인 인기 캐릭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게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더 안정적인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블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어벤져스> 이후 이어진 소위 ‘페이즈2’에서 본격적으로 과감한 행보를 시작했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블랙위도우는 새로운 동료와 적을 불러모았고 2015년 개봉예정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원래 <엑스맨> 소속이었던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까지 등장시킬 예정이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부족해 이야기의 배경을 아예 우주 저편으로 옮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까지 추가했다. 공들여 만든 탄탄한 세계관을 활용할 수 있는 이득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성공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미 <어벤져스>가 나오기도 전인 2010년에 제작을 예고했고, <토르: 다크 월드>의 쿠키 영상을 통해 앞으로의 등장을 암시했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강렬한 개성이 가득한 캐릭터를 출연시키고 뚜렷한 색깔의 유머를 구사하는 한편, 이질적 성격의 문화 코드를 접합시켜 ‘새로운 익숙함’을 선사한다. 게다가 그 와중에 ‘페이즈3’라는, 다시 한번 확장시킬 세계관을 위한 포석까지 미리 깔아두었으니 어쩌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마블의 가장 야심찬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제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영화 속 캐릭터들을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열번째 작품에 어떤 매력과 특징이 담겨 있는지 짚어보자.
케빈 파이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미래는 내 손안에
최근 마블 관련 뉴스를 보면 항상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케빈 파이기’이다. 그는 일찍이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리안의 <헐크> 그리고 지금은 다들 흑역사로 분류하는 <데어데블>, <판타스틱4> 등에 제작자로 참여하며 코믹스 원작의 영화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8년에는 드디어 <아이언맨>에 합류하며 ‘어벤져스’ 시리즈를 이끌었으며, 현재 실질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미래를 결정짓는 위치에 서 있다. 케빈 파이기의 역할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칼로 자르듯 구분하는 건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언맨>부터 <캡틴 아메리카2>까지 이어지는 아홉편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은 그가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이 없는 정면돌파형 승부사라는 것이다. 이는 토니 스타크를 자의식 과잉의 바람둥이로 설정한 것이나 캡틴 아메리카의 ‘시대착오적’ 코스튬을 과감히 원형 그대로 고집한 것 정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아이언맨>의 제작과 동시에 ‘쉴드’와 어벤져스의 등장을 기획한 전략가이며, 주연배우도 다 캐스팅 안 된 상황에서 촬영을 먼저 시작해 <토르: 다크 월드>를 완성한 엄청난 추진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케빈 파이기의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가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다. 이 작품은 사실 제작 소식이 전해질 때부터 팬들의 기대와 걱정을 함께 샀다. 이는 물론 실사영화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캐릭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존 작품들과 쉽게 접점을 찾기 힘든 세계관 탓도 컸다. 즉 이 영화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상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히 나온다. 이 영화는 굳이 앞서 만들어진 영화와의 연결점을 의식하지 않은 채 독립적인 작품으로 기능한다. 그냥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케빈 파이기의 다음과 같은 인터뷰는 주목할 만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아이언맨> 이후 가장 위험부담이 큰 작품이었다. (생략) 내가 어릴 때 본 영화의 인디아나 존스, 그렘린 등은 내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캐릭터였다. 나는 80년대에 어린애였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관객이 이 영화를 새롭게 보길 바란다.” 다시 말해 익숙한 길을 걷기보다 위험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히 새로움을 시도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주 저편을 배경으로, 말하는 너구리와 걸어다니는 나무의 모험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패기 넘치는 기획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제임스 건: B급 감성 영화광의 독특한 연출
케빈 파이기는 또 하나의 과감한 시도를 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실제로 만들어갈 시나리오작가와 연출자로 인디영화 감독이나 다름없던 제임스 건을 기용한 것이다. 이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감독 자리에 코믹 시트콤 <커뮤니티>의 앤서니 루소와 조 루소를 앉힌 것만큼이나 대담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건 제임스 건이 단지 큰 예산의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는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독특한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취향의 문제였다. 1970년생인 제임스 건은 <트로미오와 줄리엣> <새벽의 저주>(감독 잭 스나이더, 2004) 등의 각본을 쓰며 경력을 쌓은 감독으로 일찍이 12살 때 인간의 장기가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좀비영화를 찍은 영화광이었다. 그는 그 뒤 <슬리더> <슈퍼> 등을 연출했는데, 그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확인하고 싶다면 둘 중 아무 영화나 당장 보면 된다. 특히 아무 능력도 없는 ‘슈퍼히어로’들의 기괴한 모험과 쓸쓸한 결말을 그린 <슈퍼>는 소위 ‘영웅’에 대한 제임스 건만의 삐딱한 해석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런 그가 1억7천만달러의 제작비를 자랑하는 블록버스터를 연출했으니 그가 자신이 추구해온 색깔을 포기했으리라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는 박살난 두개골이나 징그러운 촉수 괴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임스 건이 줄곧 고수해온 감성, 특히 위악적으로까지 보이는 짓궂은 유머 감각은 여전히 잔뜩 녹아 있다. 이를테면 동료 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들이 원색적으로 상대를 모욕하고 아물어가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나(주로 ‘우주 너구리’ 로켓과 ‘식물 휴머노이드’ 그루트를 대상으로 한다. 구체적인 문구는 직접 확인하시길) 조금이라도 진지해질 것 같으면 기어이 싱거운 농담으로 그 흐름을 끊고 마는 심술 등은 오히려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진 감독의 유머 감각을 느끼게 한다. 또한 저 먼 외계의 별에서 불쑥 등장하는 80~90년대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인용이나, 키치적인 B급 감성을 물씬 풍기는 분장과 미술은 제임스 건의 오래된 팬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뛰어난 앙상블
마지막으로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69년 코믹스를 통해 처음 등장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슈퍼히어로들 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캐릭터군에 속한다. 온몸이 문신으로 덮인 거구 ‘드랙스’나 초록색 피부의 ‘가모라’도 눈길을 끌지만 난폭한 성격의 너구리 ‘로켓’과 티 없이 맑은 눈을 가진 거대한 나무 ‘그루트’는 그 외양만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 네 캐릭터에 비하면 껄렁대는 지구인 ‘스타로드’는 평범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무턱대고 몇몇 캐릭터의 개성에만 의지하는 건 아니다. 감독은 다섯명의 주연을 포함해 열명이 훌쩍 넘어가는 주요 캐릭터들의 조화에 큰 공을 기울인다. 이를 위해 감독은 각 캐릭터에게 서로 다른 뚜렷한 목표를 부여해 계속 부딪치게 만든다. 로켓은 스타로드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필요하고, 스타로드는 로켓만이 알고 있는 어둠의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들의 흥미로운 갈등은 각 캐릭터의 저마다 다른 사연과 매력을 통해 한층 재미를 더한다. 의외의 순간에 등장해 사건의 국면을 전환시키는 스타로드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든지, 주인공 일행의 조력자인 동시에 가장 무서운 적인 도적 ‘욘두’의 양면적인 매력 등은 이야기 곳곳에 배어들어 그 맛을 더욱 깊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벤져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뛰어난 캐릭터 앙상블을 선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마블의 야심찬 기획이 제임스 건이라는 독특한 개성의 감독과 만나 완성된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 자체의 재미는 물론, 2015년 개봉 예정인 <앤트맨>과 함께 새롭게 펼쳐질 ‘페이즈3’의 세계를 살짝 드러낸다는 점에서 팬들의 마음을 더욱 뛰게 만든다(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의외의 신캐릭터가 쿠키 영상에 등장한다). 마블은 이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속편 개봉일을 2017년 7월28일로 확정했고, 이례적으로 제임스 건에게 다시 한번 연출을 맡겼다. 그러니 이제 관객에게 남은 건 결국 그때까지 또 기다리는 일뿐이다. 벌써부터 욕쟁이 너구리 로켓이 그리워지려 한다.
우주 분위기 살리는 지구 음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또 다른 주인공은 스타로드의 워크맨을 통해 흘러나오는 ‘7080’ 팝송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 영화는 ‘주크박스 뮤지컬’로 분류하고 싶을 정도로 노래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거의 시퀀스마다 그에 어울리는 노래가 한곡씩은 꼭 등장한다. 그리고 우주에서 모든 이야기가 벌어지는 영화의 특성상 잘못하면 전체 분위기가 비현실적으로 붕 뜰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에게도 친숙한 옛날 ‘지구 음악’이 정겨운 친밀감을 더해준다.
또한 영화 속 음악은 단순히 분위기를 따라가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위기를 직접 주도하기도 한다. 특히 전혀 즐겁지 않은 순간에 흘러나오는 <Hooked on a Feeling>의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한 리듬은 저절로 폭소가 터지게 만들며, 긴장이 가장 고조된 순간 사용된 잭슨파이브의 <I Want You Backgt;은 이야기의 흐름까지 일순에 바꿔버린다. 끝으로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에 맞춘 한 등장인물의 귀여운 춤까지 보고나면 영화 속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 테이프가 거의 또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