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감독과 젊은 배우들의 청춘영화다. 단, 이 청춘들은 아프다. 그것도 암말기 환자들이다. 이 중요한 한 가지를 제외하고 다른 청춘영화의 공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맘에 맞는 상대를 만나고 티격태격하다 한쪽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대부분이 겪는 인생의 과정이다. 다만, 죽음을 통해 상대를 잃는 것은 다소 예외적일 수 있다.
말기 암환자인 헤이즐(셰일린 우들리)은 13살 때부터 암과 투쟁해왔고 지금은 호흡을 위해 산소통을 배낭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소녀다. 부모의 권유로 암환자 환우회 모임에 어거지로 참석했다가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를 만나게 된다.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는 자기만의 ‘상징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그는 환한 미소가 매력적인 소년이다.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곧 죽는다는 절대불변의 무게는 둘을 가깝게 묶어준다. 헤이즐은 상처에 관한 피터 반 후텐(윌렘 데포)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을 뿐 아니라 그를 만나는 게 소원이다. 그리고 그 소설을 통해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피터는 두문불출하며 후속작도 안 쓰고 있는 기괴한 인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고 피터의 집을 방문한다. 헤이즐이 피터를 만나 꼭 묻고자 했던 질문은 ‘소설 속 여주인공이 죽고 난 다음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이다. 어차피 허구의 소설이니 마음대로 추측하고 상상해도 되는데 헤이즐의 관심과 집착이 과도해 보인다. 왜 그랬을까? 사실은 자신이 떠나고 난 다음 가족들의 삶이 궁금했던 거다. 어렸을 때 병원에서 부모들이 나눈 대화를 얼핏 들어 기억하고 있는 헤이즐은, 부모가 평생 자신을 돌보느라 자기 삶을 못 가졌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냉혹하게도 헤이즐의 부모는 헤이즐이 언젠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이후의 삶도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젊은 연인들이 감상하기 좋을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되는 인물은 소설가 피터 반 후텐이다. 관객은 달리 느낄 수 있겠지만, 이미 끝낸 작품 뒷이야기를 해달라고 오는 독자가 그리 반가울 리도 없다. 그래도 영화 말미 그가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게 증명된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자신들이 죽을 걸 알기에 추도사를 미리 준비한다. 그러나 진짜 추도식에서 헤이즐은 적어온 노트를 버리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추도식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행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