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가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되자 그레타(키라 나이틀리)는 그와 함께 뉴욕에 온다. 오래지 않아 둘 사이에 신뢰가 깨어지고 음악적 파트너이자 오랜 연인을 잃은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는 마지막 밤 라이브클럽에 간다. 한편 잘나가던 음반 프로듀서였지만 이제는 퇴물이 된 댄(마크 러팔로)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들른 라이브클럽에서 그레타의 노래를 듣게 되고 그녀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영화는 악몽 같은 하루를 보낸 그레타와 댄의 과거를 경유하여 이들의 만남의 순간에서 다시 출발한다.
<비긴 어게인>은 도시 뉴욕에 바치는 음악적 헌사와도 같은 영화다. 신드롬과도 같던 <원스>의 흥행 이후 감독 존 카니는 어떠한 고민을 했을까. <비긴 어게인>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해답이다. 음악영화만 하는 감독이 되기는 싫겠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것을 굳이 안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 영화는 음악을 활용해 만든 제법 괜찮은 드라마다. 작품 속 데이브는 영화에 노래가 소개되어 유명세를 얻는다. 갑작스런 성공으로 데이브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현실에서 감독 자신이 겪었을 경험을 넌지시 암시하는 듯하다. 등장하는 노래들은 인디송과 유행가의 중간쯤에 있을 법한 감성을 전달하는데, 이는 잘나가는 여배우와 록스타가 등장했지만 저예산 인디영화도 매끄러운 상업영화도 아닌 이 영화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실연당한 무명의 싱어송라이터가 한물간 알코올중독자 프로듀서를 만나 음반을 만든다는 뻔한 스토리로도 영화는 묘하게 진부하게 전락하지 않을 정도의 품격을 유지해나간다. 무엇보다 그레타와 댄 사이의 존경과 매혹으로 얽힌 음악적 관계가 인상적이다. 센트럴파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옆, 차이나타운 등 뉴욕 곳곳의 현장음을 반영한 합주 장면은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다. 싱어송라이터 그레타 역의 키라 나이틀리는 ‘카디건스’의 보컬 니나 페르손을 연상시킬 정도로 개성적인 음색을 선보였다. 처음 영화에 출연한 ‘마룬5’의 애덤 리바인의 연기도 의외로 자연스럽다. ‘뉴 래디컬스’의 리더이던 그렉 알렉산더가 작곡한 노래들은 감성적 순간을 만들어내며 서사에 기여한다. <원스>에서처럼 노래를 통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드라마가 매혹적 공간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비긴 어게인>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행복이 가짜 위안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영화가 신뢰하는 음악의 진정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