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수 바다를 주름잡던 안강망 어선 ‘전진호’는 낡고 오래되어 감척사업 대상이 된다. 배를 잃을 위기에 몰린 선장 철주(김윤석)는 조선족 밀항 일을 하게 된다. 기관장 완호(문성근), 갑판장 호영(김상호), 롤러수 경구(유승목), 선원 창욱(이희준),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까지 여섯명의 선원은 그렇게 망망대해로 향한다. 이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밀항자들과 한배를 탄 운명이 된다.
<해무>는 지난 2001년 있었던 제7태창호 사건(국내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조선족과 중국인 60명 가운데 25명이 질식사하자, 이들을 밀입국시키려던 국내 어선 선원들이 사망자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사건)에 바탕을 둔 극단 연우무대의 창립 30주년 기념작인 연극 <해무>를 영화화한 것이다. 오리지널 스토리 자체가 탄탄하지만 연극으로는 볼 수 없었던 밀항과 살육의 처참한 광경,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해무의 음산한 풍경을 충실하게 옮겨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혼돈, 인물들 저마다의 어긋난 욕망 모두를 포괄하는 해무의 차갑고 촉촉한 느낌이 무척 인상적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심성보 감독은 물론 제작자 봉준호와 촬영감독 홍경표를 매혹시킨 절대적 요소였을 것이다. ‘과연 인간이 저럴까’ 싶을 정도로 한없이 추락하는, 거의 제어하기 힘든 지경으로 미쳐가는 배우들의 모습 또한 지긋지긋하다. 그처럼 전진호는 한순간 지옥이 되고 더이상 수습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한정된 공간을 채운 드라마의 팽팽한 밀도야말로 보는 이를 질식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