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제로법칙의 비밀>
2014-08-13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제로법칙의 비밀>은 <브라질>(1985), <12 몽키즈>(1995)에 이어 디스토피아 3부작을 이룰만한 테리 길리엄의 망상적 SF다. CG의 터치를 빌린 판타지의 연속된 실패 이후 테리 길리엄은 복고풍의 수공예적 미장센으로 돌아왔다. 거대 컴퓨터 회사 맨컴에 근무하는 프로그래머 코언(크리스토프 왈츠)은 머리가 빠지고 건강이 악화될 정도로 혹독한 업무에 시달리지만 언젠가 걸려올 삶의 진실을 알려줄 전화를 기다린다. 맨컴의 회장(맷 데이먼)은 그에게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자택근무를 허락한다. 코언은 상담의사(틸타 스윈튼)의 컨설팅과 콜걸(멜라니 티에리)에게 심리적 위안을 받으며 성화로 가득한 수도원 같은 집에서 혹독한 수식 계산을 반복한다. 그의 업무는 카오스를 통해 이윤을 얻는 회사를 위한 것일까, 공허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론적 탐색일까. 정답은 분명치 않지만 전화를 기다리는 코언은 불가능한 은총을 기다리는 카프카적 세계의 주인공과도 비슷해 보인다.

주인공 코언은 자신을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부르는데, 독특한 철자의 이름(Qohen)은 발음상 영국 여왕(Queen)을 연상시키며 언어유희의 효과를 준다. 작품의 기본 설정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약성서 전도서의 세계관에 빅뱅이론과 같은 우주물리학을 결합시킨 것이다. 발전과 변화를 바라지 않는 한에서라면 조잡하여 매혹적인 미장센, 어수선한 코믹 설정, 컬러풀한 색감, 강박과 망상 등 우리가 테리 길리엄의 세계에서 기대할 법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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