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식민지 시대에 창작된 근대문학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2014-08-20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흐뭇한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얀 메밀꽃이 피어 있는 달밤, 얄밉지만 정감어린 인물들이 살아가는 농촌 마을, 진눈깨비 날리는 비정한 경성의 거리 등 식민지 시대에 창작된 근대문학의 정서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현되었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은 이효석, 현진건, 김유정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옴니버스작이다. 앞으로 선보일 근대 단편문학을 토대로 한 애니메이션 작업의 첫 번째 공개작이기도 하다.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2011)을 제작했던 ‘연필로명상하기’의 안재훈, 한혜진 감독은 전작에 이어 한국적 서정성을 담아낸 수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다. 상상대로 이미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이 과거 문예영화나 TV문학관 이상으로 원작의 정서와 분위기를 재현해내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각 작품의 농익은 서정성, 의뭉스런 해학성, 빈곤이 주는 비애감은 서로 다른 연출방식으로 선보인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메밀꽃이 살랑대는 달밤의 서정성을 담아낸 아름다운 작화가 인상적이다. 암시적 대화를 통해 인물의 속마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시적 분위기 역시 일품이다. 3년째 머슴처럼 살고 있는 데릴사위의 억하심정을 담은 <봄봄>은 원작 특유의 엉큼한 정서를 살리기 위해 판소리 창(남상일)으로 흥취를 더했다. <운수 좋은 날>은 동소문에서 남대문까지 식민지 경성 풍경을 공들여 재현해냈다. 작품은 진눈깨비 추적대는 차가운 거리를 뛰어다니는 인력거꾼 김 첨지의 ‘유난히도 운수 좋은’ 하루가 근대의 아이러니에 잠기어가는 처연한 과정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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