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들이 감금되어 있는 거대한 미로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위기는 눈앞에 놓인 미로다. 미로는 매일 지형이 바뀌는 데다가 매일 밤 그 문이 닫히는데, 미로 안에서 밤을 보낸 사람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다. 게다가 미로 안에서는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메이즈 러너>는 <헝거게임> <다이버전트>와 같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 스릴러이며, 풋풋해서 아름다운 어린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10대물이기도 하다. 미국과 한국에서 9월18일에 동시 개봉하는 <메이즈 러너>의 감독과 출연진을 8월25일 베벌리힐스에서 만났다. 살기 위해 미로 안을 달려야 하는 아이들이 되기 위해서, 미로 세트 앞에서 일주일 동안 구르고 뛰었다는 어린 배우들이 이 영화를 통해 가까워진 이야기를 들었다. 감독 웨스 볼, 배우 딜런 오브라이언, 카야 스코델라리오, 그리고 미로 안을 뛰며 지도를 만드는 러너 역할로 출연하는 한국계 배우 이기홍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민호 역 오디션만 8번 봤다
이기홍 인터뷰
-민호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 유일한 아시안인데, 아시안이라는 설정이나 설명이 따로 없다. 그저 이름이 전부다.
=맞다. 그게 정말 멋진 것 같다. 물론 그에 대한 공은 모두 원작을 쓴 제임스 대시너에게 돌아가야 한다. 책에서도 민호는 그냥 민호일 뿐이다. 대시너에게는 한국인과 결혼한 조카가 있는데 거기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연기할 때 대시너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가 조카사위에게서 어떤 면을 보았고 그런 인상들이 어떻게 민호라는 캐릭터에 녹아들었는지를 생각했다.
-한국계라는 사실, 마이너리티라는 사실이 <메이즈 러너>에서 이야기하는 소속감과 안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소수에 속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는 누구에게나 힘든 곳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열심히 해야 하고, 그다음에 운이 따라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나만 해도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한 뒤로부터 이 자리에 오기까지 5년이 걸렸는데, 더 오래 걸리는 사람들도 많다. 처음에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친구들에게 “한 1년만 해볼까봐”라고 했는데 그때 다들 ‘1년이라니 뭘 모르는군’ 이런 반응을 보였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민호 역을 맡기 위해 오디션만 8번 봤다. 1년을 투자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 연기를 시작했나.
=연기를 하자고 마음먹은 뒤로부터 5년 정도 지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배우는 태어나면서부터 연기하는 것을 배우고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기를 하겠다고 생각하기 훨씬 전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 있는데, 치약을 광고하듯이 들고 있는 사진이다. 누가 이렇게 시켰냐고 물어봤는데,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스스로 광고를 따라한 것이라고 했다.
벌레와 씨름하며 진짜를 찍었다
감독 및 출연진 인터뷰
-(감독에게)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든 첫 장편 데뷔작이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였나.
=웨스 볼_모든 영화 촬영이 그렇겠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애를 많이 먹었다. 예산 부족에다 시간까지 부족했다. 고작 8주 동안 영화를 촬영해야 했다. 더위와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촬영장 안의 더위와 땀 냄새를 맡고 달려든 거미, 벌레들 때문에도 괴로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화면에는 리얼리티를 더하더라. 진짜 땀이 흘러 더러워진 배우들의 얼굴 같은, 꾸며낼 수 없는 진짜가 영화에 자연스럽게 담겼다.
-스튜디오에서 원했던 첫 번째 감독은 아니었다.
=웨스 볼_알고 있다. 첫 번째 선택은 캐서린 하드윅이었다. 그가 써놓은 각본을 읽어봤는데, 사람들이 책을 보고 열광했던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다시 각본을 썼다.
-원작을 읽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웨스 볼_<파리대왕> <로스트>(TV) <구니스> <환상특급>(TV)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이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난 탈주극이면서 성장담이었다.
-<헝거게임> 시리즈나 <다이버전트>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설정의 액션 스릴러가 10대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카야 스코델라리오_실제로 우리가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거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누가 어떤 옷을 샀는지 핸드백을 들었는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알게 되지만 실제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드물다. 영화에서 10대들이 현실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무대와 배경이 다를 뿐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노력하는 10대들을 대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메이즈 러너> 원작이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나.
=딜런 오브라이언_나는 정말 이상한 나이에 전학을 와서 오랫동안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매일 부모님에게 돌아가면 안 되느냐고 졸랐다. 그때 나는 친구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비디오 촬영을 하며 놀았는데, 그 비디오 촬영이 인연이 되어 지금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다.
카야 스코델라리오_나 역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딜런과 내가 잘 통하는 이유는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가 보다. (웃음)
-캐스팅이 좋다. 관객이 영화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데 필요한 데모그래피가 모두 충족된다.
=웨스 볼_나는 정말 운이 좋다. 내가 생각한 모든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 다음 영화에서 그 운이 다할까봐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딜런 오브라이언_나는 늦게 캐스팅됐다. 카야는 거의 처음부터 캐스팅 목록에 올라 있었다. 나는 첫 오디션으로부터 석달이 지나서야 그다음 오디션을 약속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웨스가 내 헤어스타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웃음)
웨스 볼_토마스 역할은 마지막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다른 역할은 머릿속에 누굴 캐스팅할지가 그려졌는데, 토마스 역엔 리버 피닉스가 한번 생각난 뒤로는 떠나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소년이었는데, 끝날 때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영화를 찍으며 다들 돈독해진 모양이다.
=딜런 오브라이언_영화 촬영장에서 말 그대로 같이 살았다. 같은 호텔에 다 같이 투숙했는데, 매일 밤 이 방에서 파티, 저 방에서 파티였다. 지금도 단체톡방이 있고, 연락을 하고 지낸다. 나는 못 갔지만 다른 친구들은 LA 코리아타운의 코리안바비큐 식당에 가기도 했다.
-(카야 스코델라리오에게) 남자들 사이에서 혼자만 여자였는데, 어떤 기분이었나.
=그 안에서 나는 남자들처럼 행동할 필요도 없었고, 여자처럼 행동할 것을 강요받지도 않았다. 동료들은 내가 평상시 모습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