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사의 아수라장]
[곡사의 아수라장] 우리 시대 진짜 영웅은 누굴까
2014-09-05
글 : 김곡 (영화감독)
1970~80년대 이후 한국영화 속 히어로와 리더십
<변호인>

한국인은 영웅을 좋아한다. 이게 본질적인 민족성인지 외세와의 밀당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한민족의 핏줄엔 리더십 타령이 이미 흐르고 있다(심지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슬로건이 나오기 전부터 그랬다).

그렇다면 영화는? 사실 영화와 민족성은 언제나 데칼코마니로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분명히 대중문화는 정치의식의 반영이나 정치의식 자체는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리더십과 영웅은, 삐딱한 시선 속에서, 그러니깐 은유와 풍자로 왜곡된 형태로서만 영화에 출현한다. 이것은 마치, 왜곡된 형태로만 무의식을 증명하는 꿈과 같은 것이다. 꿈은 무의식에 대해서 말하지만, 언제나 빙빙 돌려서, 심지어 언제나 거짓말로만 말하지 않는가. 1970~80년대 한국영화, 즉 소위 “한국 뉴웨이브”에게 영웅들은 “바보”였다. <바보들의 행진>(감독 하길종)의 대학생 무리가 그러했고, <바보선언>(감독 이장호)의 절름발이, 택시 운전사, 창녀 무리가 그러했고, <고래사냥>(감독 배창호)의 부랑자 무리가 그러했다. 이 시대에 남은 영웅들이 할 것이라고는, 군사정부의 폭압 앞에 이제는 뿔뿔이 흩어진 거대 군중의 파편들을 부여잡는 것, 즉 몇몇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술집을 전전하고 수다를 떨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쥐죽은 듯 잘 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수자 무리는 어떤 공허한 일장춘몽을 공유하면서 형성되며, 그리고 이 무리를 이끄는 데 필요한 리더십은 바로 이 일장춘몽을 잘 가꾸고 관리하는 것이었고, 이 꿈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면서 구성원들의 흥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 일장춘몽은 사소한 승패에 열중할 때의 흥겨움, 편을 나누고 역할을 교대하는 도취감, 내기를 해놓고 기다릴 때의 설렘으로만 존재하는 대상이다. <바보들의 행진>엔 이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이 있다. 신문팔이 소년이 거스름돈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오는지 내기거는 믿음 놀이가 그것이다. 한국 뉴웨이브가 리더십이라고 보았던 것은, 절대로 오지 않을 꿈, 즉 고래를 꿈꾸는 능력이었던 거다. 즉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이 가장 영웅다웠다. 왜냐하면 영웅도 구제할 수 없는 절망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많은 영웅들은 애니메이션과 아동영화(‘영구’, ‘홍길동’ 시리즈)로 이사 간다. 무의식이 유아기로 퇴행하듯, 영웅은 일장춘몽으로 유배당한 것이다. 그만큼 이 시기에 유일한 영웅은 몽상가였다.

<바보들의 행진>

미국산 히어로에서 신화적 영웅으로

바로 이때! 군사정권은 퇴진하였고(물론 안타깝게도 한참을 뜸들이다가 그리하였지만…), 정치적/문화적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져 영화적 상상력을 나름 마음껏 펼쳐내는 민주시대가 도래하였으니, 이게 바로 90년대 한국 영화계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더이상 영웅은 일장춘몽으로 유배될 필요도 없었고, 리더십은 고래사냥으로 제한될 필요도 없었다.

이제- 더이상 부랑자와 거지, 금치산자로 위장한 바보 영웅이 아니라- 번듯한 영웅이 나올 때도 된 것이다. 이 황금기에도 한국의 영웅은 죽어지내야 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인데, 생각나는 대로 마구 훑어보면, 일단 영웅님이 나서기 전에 풀어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았고(즉 청산해야 할 업보들이 너무 많았고), 이미 충분히 비대해진 대중적 상상력을 펼쳐내기엔 아직 영화계의 기술적/재정적 인프라가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의 아이러니여!- 한국영화가 재부흥에 어쩜 그리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맞췄는지, 때마침 상상력 고갈로 체되고 있던 할리우드는 마블/DC코믹스의 카툰 히어로들을 영화계로 마구잡이로 소환해내고 있었던 것이다(마침 할리우드는 특수효과 시스템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CG로 완전히 재정비했을 때여서 소환은 더욱 가속화되었던 것 같다). 정말 참혹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불려나오는 만화 히어로들은, 그만큼 마구잡이의 퀄리티로 스크린을 장악하고, 수출되기 시작했는데, 어허라, 그게 또 먹히더라. 그러니 더 불려나오고. 아주 신났다. 신났어. 한국 영웅 비켜! 거시기 맨 나가신다.

드디어 2000년대가 왔다. 이제 할리우드 영웅들도 관성에 젖어가고 있었고, 한국 진영도 기술적이고 재정적인 인프라를 대충 구축하였다. 무엇보다도- 코믹스에서 엉겁결에 불려나온 거시기 맨들과는 족보부터 다른- <영웅본색>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비교적 탄탄한 히어로물들을 보고 자란 세대가, 영화인들이 되어 있었다. 이제 모든 조건은 갖추어졌다. 한국 영웅이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한국 영웅은 끝내 오시지 않으셨다. 아차차… 난 하나를,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도 영원히 갖춰지지 않을 단 하나의 조건을 깜박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지리•경제학적 특성상 군사적 리더십은 웬만하면 미국에 내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우주정복 괴물이 나타났다고 치자. 과연 가슴팍에 태극기 단 한국 홍길동이 출동하는 게 개연적인가, 가슴팍에 성조기 단 눈 파란 슈퍼맨이 출동하는 게 개연적인가. 당연히 후자(한국 영웅 출동하면 주한미군이 먼저 격추시킨다… 젠장…). 이때쯤 십년째 영웅을 기다리던 나는 깨닫는다. 아… 6•25 전쟁 이후로는 한국 히어로는 불가능한 거였구나… 괜히 기다렸어. ㅅㅅㅂㅂ 내가 고래사냥꾼이었어. ㅅㅅㅂㅂㄹㄹ… 바로 이 때문일까. 2000년대 한국 영화계를 빛낸 영웅들은, 모두 신화적(혹은 공상적) 리더십으로 중무장한 영웅들이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감독 류승완)이 그러했고, <전우치>(감독 최동훈)가 그러했다. 물론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영웅은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의 망상증자 병구였다. 그는 외계인 가설과 온갖 우주물리학으로 중무장한 21세기형 고래사냥꾼이다. 그의 리더십은 망상력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 영웅들이 일장춘몽으로 유배되었다면, 2000년대의 한국 영웅들은 신화로 유배된 셈이다. 그들이 설 땅에는 주한미군이 있었고.

<지구를 지켜라!>
<명량>

영웅의 좌절, 관변에의 의지

영웅은 좌절했고, 리더십은 이제 허상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얼마나 영웅주의에 당하며 살았던가. 영화는 이 실망과 좌절, 배신감과 모순들을 몸소 표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웅들을 계속 꿈과 신화 속으로 유배시킴으로써, 그들의 부재를 통해서 증명하는, 일종의 귀류논증처럼.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자 경제적 자기불황에 겹쳐, 쥐새끼 문화가 대중의 무의식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나부터 살고 보자’는 쥐새끼 힙스터 정서가 무의식에 전세를 내기 시작한 건데, 아마 골방에 앉아서 걸그룹을 들여다보는 쥐구멍 문화 혹은 남몰래 자격증 시험공부나 하는 소굴 문화가 시작된 것도 이때쯤부터이리라. 한국 영웅들은 다시 봉기를 준비한다. 쥐새끼라니. 지금은 “으~~리”가 필요할 때다! 리더십으로 모두 통합해주마!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주한미군! 한국 영웅은 리버럴 힙스터들에 맞서서, 소굴탐닉증 쥐새끼들에 맞서서, 다시 “으리”를 챙길 봉기를 준비한다. 단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그것은 마침 경제불황으로 추락해버린 부성의 형태를 잠깐 빌리는 것이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그래 주한미군과 마블/DC코믹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한국 대중의 입맛에 가장 부합하는 방법. 그것은 부성애로 다시 읽는 가화만사성이다(대표적인 예로 <7번방의 선물>). 수신제가면, 치국평천하가 아쉽다고? 그래서 준비했다. 관변 히어로물들(<변호인> <광해, 왕이 된 남자>). 그리고 드디어 관변 히어로는 주한미군, 심지어 주일미군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자신만의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안전한 영웅신화다(<명량>). 하지만 이러한 ‘관변에의 의지’ (‘힘에의 의지’ 니체 땡큐)는 여전히, 한국 히어로가 겪어왔던 오욕과 피멍의 역사적 문맥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역사적 문맥이 증거하는 것은, 한국 히어로는 언제나 일그러진 허상으로서만 실존했다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래서 소녀 감히 우려되옵니다. 최근의 관변적 시도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에 각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리더십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도리어 눈감기 위해서 시도되는 상상력의 궁여지책은 아닌가, 리더십의 복원을 핑계로 리더십의 대중 장악력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 할리우드가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마구잡이로 소환했던 것처럼, 한국 영화계가 관변 히어로들을 마구잡이로 소환하는 것은 아닌가, 할리우드에 대항한다면서 할리우드가 밟았던 전철을 똑같이 밟아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감히 우려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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