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소년들 <메이즈 러너>
2014-09-17
글 : 송경원

자신의 이름 이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들이 정사각형의 폐쇄공간에 모여 살고 있다. 사방을 둘러싼 수십 미터의 벽 뒤엔 끝을 알 수 없는 미로가 펼쳐져 있고 탈출방법은 오직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뿐이다. 이른바 ‘러너’로 뽑힌 아이들이 밤에만 출현하는 정체불명의 괴물 그리버를 피해 조금씩 미로의 지도를 그려나가길 꼬박 3년, 어느 날 기억을 잃은 또 한명의 소년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가 등장하며 상황은 급변한다. 폐쇄공간에 차츰 적응하던 아이들은 이제 탈출이냐 죽음이냐를 선택해야만 한다.

제임스 대시너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메이즈 러너>는 3부작을 전제로 한 디스토피아 SF 액션이란 점에서 얼핏 <헝거게임> <다이버전트>를 연상시킨다. 결정적 차이는 소녀들의 혁명이 아니라 소년들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는 점인데 딜런 오브라이언, 윌 폴터, 토머스 생스터 등 떠오르는 훈남으로 알차게 채운 캐스팅만 봐도 이 영화의 공략 포인트가 어딘지 짐작이 간다. 의문의 공간에 갇힌 소년들이 집단과 규칙을 만들어 생존한다는 설정은 <파리대왕>이나 <15소년 표류기>가 떠오르고 미로 안에서 겪는 공포와 위협의 구성은 <인디아나 존스> <구니스>와 닮았다. 계속 변형되는 의문의 폐쇄공간에서의 탈출 역시 <큐브>에서 이미 활용한 컨셉이다. <메이즈 러너>는 기존의 각종 소년 모험담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뒤 풋풋한 청춘스타들을 도구 삼아 꽤 효과적으로 엮어나간다. 미로의 설계나 탈출까지의 호흡도 나쁘지 않고 끝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요소는 나름 한방을 감추고 있다.

문제는 그 한방이 이번 영화에서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사한 3부작 원작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개별영화의 완결성보다 3부작으로의 확장에 신경을 쓴 탓에 해결해야 할 의문과 이야기의 허점들을 모조리 다음 작품으로 미뤄버린다. 몇몇 치명적인 오류는 무시할 수 없을 수준임에도 대충 덮고 넘어가는 통에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감이 확 떨어진다. 미로의 디자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그저 무대로 활용될 뿐 하나의 캐릭터로 인격이 부여되지 않아 아쉽다. 미로를 탈출하는 과정도 퍼즐을 풀기보단 무작정 달려나가는 쪽에 가까워 ‘미로’는 사라지고 ‘러너’만 남는다. 흥미로운 설정을 던져만 놓고 정작 중요한 수행과정은 생략한 반쪽짜리 답안지다. 연출보단 이야기의 짜임새 문제인지라 원작 <스코치 트라이얼> <데스 큐어>로 이어질 속편이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