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 <60만번의 트라이>
2014-09-17
글 : 우혜경 (영화평론가)

‘당신의 조국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눈물 짓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조국의 말과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며, 고립된 공동체 안에서 어디에도 완벽히 환원되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박사유 감독과 재일조선인 3세 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2006)를 통해 먼저 소개된 바 있는데 이 영화가 ‘홋카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을 담고 있었다면, <60만번의 트라이>의 중심에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가 놓여 있다. 2007년, 오사카시가 갑작스럽게 오사카조교 운동장을 시소유지라 주장하며 소송을 걸어오자 재일조선인들을 중심으로 운동장을 지키기 위한 서명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를 취재했던 박사유 감독의 눈에 우연히 운동장에서 훈련하고 있던 오사카조교 럭비부 학생들이 들어왔고, 몸을 사리지 않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은 이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 되었다.

카메라는 어떠한 영화적 기교도 배제한 채 서툴지만 솔직하게 럭비부 학생들의 이야기를 예선이 진행된 봄부터 대회가 치러진 겨울까지 차례차례 따라간다. 재일조선인 학교라는 이유로 정식 대회의 참가 자격조차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고된 훈련과 투쟁을 거치면서 늠름하게 성장한다. 외견상 ‘역경+극복=감동’이라는 전형적인 스포츠 다큐멘터리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역경의 변주로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들의 여러 문제가, 극복의 과정에서 암으로 투병하며 영화를 촬영해야 했던 감독의 개인사와 겹치면서 영화가 건드리는 문제의 범위와 감정의 깊이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발전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의 위치다. 관찰자적 위치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뒤쫓던 카메라를, 어느 순간 한 학생이 정면으로 바라보며 ‘사유 누나!’라고 부른다. 이때 카메라는 화답이라도 하듯 관찰자적 태도를 버리고 망설임 없이 아이들 속으로 섞여들어간다. 카메라와 대상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 영화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 가지, 박사유 감독의 1인칭 시점에서 내레이션이 진행되는 만큼 배우 문정희의 목소리 대신 감독 자신의 목소리가 그대로 사용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욕심처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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