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더불어 독일 ‘질풍노도의 시대’와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프리드리히 실러를 다룬 영화 <비러브드 시스터스>(Beloved Sisters)가 화제다. 1952년생 독일 중견감독 도미닉 그라프가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올해 초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당시 독일 언론들은 수상을 점쳤으나 그라프 감독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런데 최근 이 영화가 오스카상 외국어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비러브드 시스터스>는 실러가 생전에 남긴 편지의 한 구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오늘 밤, 혹은오늘 아침 나는 내 행위의 주인이 아니었다’라는 모호한 문장에 상상력을 덧붙여 실러가 자신의 처형과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영화 속 실러는 가난하지만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29살 청년 작가다. 그는 몰락한 귀족 집안의 딸인 샬로테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청혼하기 위해 그녀의 본가를 방문한 실러는 처형이 될 카롤린에게 더 큰 매력을 느낀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카롤린도 실러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런데 우애가 돈독한 이 아름다운 자매는 한 남자를 두고 질투와 반목은커녕 화목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눈다. 이 순간 마술과도 같이 관객도 이들의 기묘한 관계에 빠져든다. 영화는 세 사람 사이의 열정적인 서신 교환으로 이들의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표현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써보내는 등장인물들의 행위는 요즘 젊은이들의 SNS에 비견할 만하다. 배우들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서신 교환 장면들은 그 시절의 감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 <비러브드 시스터스>는 당대의 시대정신과 분위기도 놓치지 않는다. 영화는 <호렌>이라는 동인지를 이끌며 인쇄기술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열망에 싸인 야심찬 실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러브드 시스터스>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와 공간을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