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신은경] <설계>
2014-09-23
글 : 주성철
사진 : 최성열
신은경

“꼭 돌아오고 싶었던 고향이죠.” 오랜만에 영화를 찍은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신은경은 영화가 ‘고향’이라고 했다. 신은경은 당시로선 드물게 중학생이었던 1988년에 KBS 탤런트 특채로 연기 인생을 시작,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구로아리랑>(1989)으로 데뷔한 뒤 줄곧 영화와 TV를 오가며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도 팬들은 TV드라마 <종합병원>(1994)의 중성적이고 명랑한 레지던트 혹은 <조폭마누라>(2001)에서 ‘형님’이라 불리던 무뚝뚝한 표정의 여자 보스를 기억할 것이다. 굳이 영화계를 고향이라 부르는 데는 잠시나마 연예계 활동을 쉴 수밖에 없었던 때 임권택 감독의 부름으로 <노는 계집 창>(1997)에 출연하며 재기할 수 있었던 기억, <조폭마누라>의 기록적인 흥행 이후 영화배우로서 더 인정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노래자랑>(2013)에서처럼 적은 비중의 엄마 역할이라도 너무 하고 싶었다. 꼭 다시 멋지게 고향에 입성하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웃음)”

<설계>는 <미스터 주부퀴즈왕>(2005) 이후 모처럼의 복귀작이었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두 여자>(2010), 그로부터 4년 만의 출연작이다. 그사이 TV드라마 <욕망의 불꽃>(2010)과 <스캔들>(2013)을 통해 ‘역시 신은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말하자면 언제나 ‘준비된’ 상태였다. <설계>의 세희(신은경)는 가족처럼 믿었던 측근의 배신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막대한 재산을 모두 잃은 채 삶의 막다른 곳으로 몰린다. 이후 화류계를 전전하며 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중 사채업계의 큰손이 되어 복수에 나선다. 세희는 신은경의 필모그래피에서 막대한 액션분량을 소화해야 했던 <조폭마누라>나 잠수부대 훈련교관으로 출연했던 <블루>(2003)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센’ 캐릭터다. “세희는 극과 극을 오간다. 그 과정에서 단지 강하게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부드러운 깊이를 담아내고 싶었다. 너무 강해서 오히려 부드럽게 느껴지게끔?”

신은경은 지난 몇년간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TV토크쇼에 나와 허심탄회하게 그런 얘기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며, 밝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로서 어떤 어려움과 외로움도 이겨내겠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역경과 고독을 지닌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설계>의 세희는 현실의 신은경과 얼핏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설계>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가 그것이었고, 조심스레 그에 대해 물었다. “맞다, 부인할 수 없다. 세희가 처한 극한 상황과 나의 현실의 분위기가 분명 비슷하게 흘러가는 지점이 있었다. 어쨌건 사람을 믿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외로움은 세희만큼이나 나도 충분히 겪어봤다. (웃음)”

그럼에도 힘들게 돌아온 고향인 만큼 매 순간 설레기도 했다. 거의 30년 전 영화 <구로아리랑>이 떠오르기도 했다. “원래 영화 촬영장의 슬레이트 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집중하고 있다가도 ‘탁!’ 하는 소리에 그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많아서다. 그 소리가 꼭 ‘어디 한번 해보시지’ 하는 느낌으로 들려서 그런가. (웃음) 그런데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게 바로 <구로아리랑>과 <설계>다. 그만큼 빠져 있었다는 얘기다. 고향으로 잘 돌아왔다 싶다. (웃음)” 더불어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나 단순하지만 진실인 이야기, 현재 심경을 너무나 정확하게 드러내는 얘기로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영화는 진짜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 찾아온 고향에서 역할이나 비중을 떠나 정말 쓸모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물론 나에 대한 오해나 선입견 혹은 어긋난 기대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은 힘든 만큼 고마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견디며 더 열린 것 같다. 오히려 신인 때보다도 더. 여배우 기근이라는 말만 하지 마시고 눈을 더 크게 떠주시길.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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