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사바: 저주의 시작>은 ‘분신사바’의 중국식 표현인 <필선>(筆仙)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 개봉되어 2주 만에 6천만위안(약 107억원)의 수익을 올리며 중국 호러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작품으로, 뒤늦게 공개되는 안병기 감독의 중국 진출작이다. 가정폭력에서 아들을 지키려는 소설가 샤오아이(매정)는 남편이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자 친구이자 의사인 이난(곽경비)에게 부탁해 외진 별장으로 아들을 데리고 피신한다. 불길한 느낌의 저택에서 샤오아이는 헛것을 보고 아들은 소녀인형을 주워온다. 한편 공포소설을 집필 중인 샤오아이의 컴퓨터에는 쓰지도 않은 공포소설이 입력되어 있다.
절제된 영상과 불쾌한 무드의 조성 면에서 이 작품은 안병기 감독의 호러영화 중 가장 출중한 성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안병기 감독의 연출력에 중국 각본가들의 멋진 시나리오가 어우러져 놀라운 성과물이 만들어졌다. 대저택에 고립된 작가의 히스테리와 아이의 불안이라는 요소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떠오른다. 공간의 미장센에서는 <장화, 홍련>도 연상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만의 미덕은 분명하다. 익숙한 모티브들, 가령 여성의 원한에 뿌리를 둔 아시안 호러의 특징, 동화적 상상력, 소설가의 히스테리, 모성적 불안, 아이의 악마성 등을 능란하게 활용하여 전체적으로 잘 짜인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고풍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깔끔한 내러티브, 미려한 촬영도 수준급이다. <분신사바: 저주의 시작>은 탁월한 균형감각을 갖춘 웰메이드 호러영화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