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비아 피날을 <비리디아나>(1961)를 통해 처음 봤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를 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브뉘엘은 이미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지만, 다시 말해 서구에서는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알렸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멀었다. 그의 영화는 낯설었고, 그는 소문난 좌파였는데, 그런 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도 시네클럽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비로소 브뉘엘의 영화들도 조금씩 소개됐다. 그러나 브뉘엘의 초현실주의 영화들은 즐기기엔 여전히 ‘모호한 대상’이었다. 그 모호함의 벽을 넘볼 수 있게 해준 작품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비리디아나>이고, 여기서 빛난 별이 실비아 피날이다.
경력의 전환점은 브뉘엘의 <비리디아나>
<비리디아나>를 본 관객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혼자 사는 숙부의 집에 수녀 비리디아나가 도착한 첫날 밤 말이다. 그날 밤 비리디아나는 회색의 수녀복 속에 숨어 있던 세속의 관능을 처음 보여준다. 성적 매력이 제거된 듯 보이는 여성의 극적인 반전인데, 그녀는 거울 앞에서 두건을 벗고, 긴 금발을 늘어뜨리며, 풍만한 가슴 윤곽을 드러낸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은 그때 생겼다. 복도 건너편 방에선 숙부가 오르간의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대단히 성적인 동작이다), 바흐의 미사곡을 연주하고 있다. 관능의 금발도 위험한데, 곧이어 브뉘엘은 비리디아나의 허벅지까지 남김없이 보여주며, 이 영화가 얼마나 불안한 수준까지 갈 것인지 미리 엄포를 놓는 것 같았다. 세속적인 남자와 종교적인 여성 사이의 긴장, 근친상간의 불안, 신성모독의 공포 등이 한꺼번에 밀려온 도입부였다.
<비리디아나>에서 실비아 피날은 처음엔 청순한 수녀로, 곧이어 숙부를 무의식의 포로로 만드는 관능의 화신으로(물론 의도적이 아니라 카메라의 대상으로), 또다시 종교적 봉사에 힘쓰는 숭고한 여성으로, 결국에는 거울 앞에서 다시 금발을 빗어내리는 세속의 여자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표면과 내면, 이성과 본능, 그리고 성과 속이 공존하는 브뉘엘의 일관된 테마는 한 배우의 몸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실비아 피날을 세계의 유명 배우로 만들었다. 멕시코 배우가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는 있었지만(이를테면 돌로레스 델 리오), 멕시코영화로 단번에 유명해진 것은 피날이 처음이었다.
브뉘엘은 원래 스페인 출신인데, 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스페인의 파시스트 정권을 피해, 프랑스, 미국, 그리고 나중에는 멕시코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멕시코에서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리자, 스페인의 프랑코는 브뉘엘을 조국에 다시 초대함으로써 파시즘에 대한 인상을 반전시키고자 했다. 프랑코 정부는 그의 영화제작을 도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성모독과 부르주아 질서를 공격하는 문제작이었다. 프랑코는 <비리디아나>의 모든 프린트를 파괴할 것을 명했는데, 실비아 피날은 몰래 필름을 칸으로, 그리고 멕시코로 반입했고, 그 덕에 영화는 빛을 볼 수 있었다.
사탄의 유혹 같은 위험한 매력
실비아 피날은 1950년대에 이미 멕시코에서 가장 사랑받는 코미디 배우였다. 출신 배경도 남달라서 일찌감치 영화계의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외조부는 멕시코 독립운동의 영웅 중 한명이었고, 부친은 언론인 출신 정치가였다. 학생 때부터 여러 미인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미모를 알렸는데, 라디오 드라마의 성우를 한 뒤, 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화계로 나와서 유리했던 것은 그녀의 노래 실력이었다. 당시 멕시코의 멜로드라마는 마리아치들의 연주를 배경으로 노래하는 장면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는데, 피날은 노래하는 연인 역에 안성맞춤이었다.
피날의 운명을 바꾼 것은 두 번째 남편인 구스타보 알라트리스테와의 만남이었다. 배우 출신인 그가 제작자로 변신하며 브뉘엘의 작품세계로 피날을 끌어들였고, 그럼으로써 피날은 과거와는 다른 배우가 됐다. 세 사람은 <비리디아나>로 처음 만난 뒤, 두편을 더 만든다. 그래서 이것을 보통 ‘트리오의 3부작’이라고 부른다. 감독 브뉘엘, 주연 피날, 제작 알라트리스테 트리오는 <비리디아나>에 이어 <절멸의 천사>(1962), 그리고 <사막의 시몬>(1965)을 발표했다. 피날이 멕시코의 스타를 넘어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남긴 것은 바로 이 작품들 덕분이다. 알라트리스테는 자신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명성을 안겨준 브뉘엘에게 더 큰 재량권을 주었다. 이때 나온 작품이 <절멸의 천사>이다. 프란시스코 아란다를 비롯한 브뉘엘 전문가들은 <황금시대>(1930)와 더불어 <절멸의 천사>를 감독 최고의 초현실주의 작품 베스트 1, 2위로 꼽는다. 그런데 피날의 팬으로서 약간 놀라는 것은 그가 주연이 아니라 20여명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한명으로 나온 점이다. <절멸의 천사>는 주연이 따로 없는 대단히 이질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브뉘엘이 먼저 “<비리디아나>의 주인공이 여기 나올 수 없다”고 말렸다. 그런데 피날의 대답은 “당신의 영화라면 아무 역이라도 좋다”는 것이었다. 피날도 남편 알라트리스테처럼 브뉘엘의 천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리디아나>에서 보여준 피날의 이중적인 매력은 <사막의 시몬>에서 다시 빛난다. 영화는 5세기 시리아의 성인인 시몬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몬은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듯, 기둥 꼭대기에 올라가서, 참회의 기도를 하며 14년을 버틴 인물이다. 여기서 피날은 성인을 유혹하는 사탄으로 나온다. 한번은 교복을 입은 순진한 여학생 차림으로, 그러고는 점잖은 남장 성직자로, 마지막으로는 관 속에 누운 시체로 등장한다. 그런데 여학생은 갑자기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성직자는 세속의 쾌락을 설파하고, 시체는 뱀처럼 유혹적으로 혀를 날름거린다. 말하자면 사탄은 육체적 쾌락과 세속 권력의 달콤함으로 시몬을 유혹했다. 그 변신이 얼마나 실감나는지, 이때만은 피날은 진짜 사탄처럼 보였다. 그만큼 위험했고,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단 하나의 영화가 단숨에 세계 영화계에 그 국가 전체의 영화를 대표할 때가 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무방비 도시>는 안나 마냐니의 존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사랑받고 기억되진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런 역할을 멕시코의 경우 <비리디아나>와 이 작품의 주연인 실비아 피날이 한 것이다.